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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엄마도 사춘기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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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레드밀 Apr 19. 2024

내 안의 그 아이 2

나의 에고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나는 내 아이를 사랑한다. 뭐 이런 뻔한 소리를...

누구보다 더 많이 사랑을 주고 싶었다. 사랑 많이 받고 자란 구김살 없는 화사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 많이 많이 사랑해주고 싶었다. 한결 같은 사랑을 주기가 이리 힘든 일인지 아이를 낳기 전엔 몰랐다. 종종 우울감에 휩싸이긴 했지만, 아이를 키우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과 관계에서 문제가 될 정도라는 걸 몰랐다. 아이는 우울한 엄마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울한 엄마가 아이를 얼마나 불안하게 했을까 싶다. 수시로 우울감이 찾아왔고 내 해결되지 않는 우울한 본성과 아이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의 간극이 너무 컸다. 결국 감정이 널을 뛰는 나쁜 양육을 했다. 우선 말해두건데 감정기복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줄 것 같아 걱정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아이가 내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자랐을 즈음엔 많이 사과했다. 그리고 엄마가 다른 이유로 좀 슬프지밀 널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는다고 안아주고 말해줬다.

참 일관되게도 내 곁엔 양육을 도와줄 이가 없었다. 친정에서 멀리 살게 된 것도 내가 바란 일이었지만 그러면서 멀리 살게 된 걸 원망한다. 남편 때문이라고..... 다른 친정 엄마들처럼 정갈한 반찬을 만들어 주지 않는 엄마도 원망했고, 가까이 사는 시부모님도 육아에 도움읕 주지 않는다며 원망스러워 했다. 내가 너무 지쳐 시댁에 아이를 데리고 가도 어머님은 나를 쉬게 할 줄 몰랐다. 너무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을 전혀 이해해주지 않았다. 사실은 나는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요구할 줄 모르면서, 외부에서 내가 불행한 이유를 열심히 찾았다. 탓할 사람 탓할 이유는 너무나 많았다.

내 우울함을 추스를 시간도 나 자신을 돌볼 여유도 없었다. 초보 엄마는 모든 걸 열심히 해야 좋은 엄마 줄 알았다.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면 쉬이 지친다. 그럴 때마다 우울하고 무기력했다. 처음부터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여러 감정들이 있음을 알아차렸으면 좋았을 테지만 친정엄마가 편찮으시다 돌아가시고 나서야 나는 내 안의 돌봐야 하는 아이, 상처받아 자라지 못한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엄마가 아프고 딸이 4세였을 때, 딸은 내가 슬픈 이유를 딸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가 다는 아니었지만 할머니가 아픈 건 아이입장에서도 공감 가는 슬픔이었던 모양이다. 아이가 기관에 다닐 때였고, 나는 아이가 없는 시간에 목놓아 울어보기도 하고, 뭔지 모를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원초적인 애를 썼다. 그러다 마음과 심리에 관한 책을 읽고 유튜브 영상들을 찾아 보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책과 영상들을 통해 내면 아이 소통과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 관해 배웠다. 나는 달라지고 싶었다. 당시 남편에 대한 시작도 알 수 없는 원망으로 관계가 소원했고 행복하지 않았다. 더 이상 이렇게 살기 싫었고 행복하고 싶었다.. 내 아이에게 가장 좋은 엄마는 행복한 엄마라는 사실도 아이를 통해 깨달았다. 한창 이쁜 말을 잘하던 시기에 '엄마가 웃으니 좋아'. '엄마랑 같이 있어서 행복해' 등의 아이의 말에 감동을 받았다. 내가 누구에게 이렇게 완벽한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아이가 내게 주는 사랑이 이런 사랑이라는 걸 알고는 많이 미안했다.

하나씩 달라져 보자. 아이가 킨더가튼에 다니던 해 5월이 되어 나는 동네를 산책하기 시작했다. 미시간호 옆으로 난 길을 뛰다 걷다 하루 5Km 정도를 산책했다. 미국 중부의 화창하고 아름다운 초여름 날씨를 만끽했다. 운동을 하니 몸도 가벼워지고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여름방학에는 아이랑 같이 자전거도 타고, 캠핑도 많이 다녔다. 마음을 돌보고 긍정적인 사고에 관한 글도 꾸준히 읽으며 영어공부도 했다. 영어공부를 하면서 자신감도 많이 살아났고, 미국에 계속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착각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

나는 내 안의 그 아이를 미워했다. 어린 시절 살갑지 않은 부모님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라며 부모님을 미워하고 나인지 동생인지 모를 그 울고 있는 아이를 미워했다. 아름답지 않은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미워했다. 마음이 예전보다 많이 차분해졌고 화를 낼 일이 잘 없으니, 그 아이도 사라졌는 줄 알았다. 많이 온화해졌고 편안했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섭섭할 때면 여전히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심장이 떨리고 눈앞이 깜깜해져 정작 하고 싶은 말을 잘 못하고 눈물만 났다. 아직 나는 불편한 감정을 맞닥뜨리면 어른 답지 못했다.울고 있는 고집쟁이 동생을 바라보듯 불편하고 서러웠다.

화를 잘 안 내니 이런 게 다 극복된 줄 알았지만 딸아이가 사춘기의 반항에 나릍 한 번씩 확인 한다. 며칠전 딸이 첫 모의고사 성적표를 안 보여주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갖고 오라는 내 말을 못 들은 체 했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나는 여전히 인정받지 못해 자라지 않은 마음이 올라왔다. 물론 딸이 정당한 이유 없이 내 말을 못 들은 체하는 게 잘했다는 건 아니다. 하다 못해 변명이라도 하면서 '내신에 안 들어가는 시험이라 대충 봤더니 성적이 너무 안 좋아서 나 스스로도 놀랬다. 다음에 좀 제대로 해보고 같이 보여주겠다.'라고 했다면 넘어갔을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이런 말을 할 줄 아는 아이라면 사춘기 아이가 아닐 테지.... 여기에 쓰듯이 아이의 마음을 이렇게 잘 이해하면서 그때는 그저 딸아이가 내 말을 무시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다행히 감정이 너무 격해지지 않은 채 성적이 아닌 태도만 이야기하고 넘어갔지만 왠지 개운치가 않다. 나 스스로 많이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그 아이는 아직도 서럽다. 내 내면 아이를 돌보고 키우는 진짜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미안해요 용서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마음에 관한 책들을 읽을 때 호오포노포노라고 하는 마음을 정화하는 네 가지 말에 관한 책을 읽었다. 고대부터 이어온 하와이 원주민들의 기도이자 주문으로 자신의 마음에 용서를 구하고 감사와 사랑을 전하는 말이다. 며칠을 개운치 않은 채로 보내다가 갑자기 이 호오포노포노가 생각났고 내가 나의 어린 시절을 미워하고 있다는 게 미안했고 용서받고 싶어졌다. 나와 동생과 그 시절을 애쓰며 사신 부모님과 내 애잔한 할머니,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기억에게. 사죄하고 싶었다. 나는 그날부터 이 정화의 언어를 읊조리며 내 기억을 정화하고 있다. 나의 기억은 그저 기억일 뿐 그 때의 일이 현재의 내 부족함의 원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 스스로 내 기억으로 인해 스스로를 해한 거친말들에 용서를 구하고 내 경험과 기억에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진정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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