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찾은 가라아게 맛집 & 불타는 도쿄타워
비가 추적추적 오는 긴자. 아직 오후 5시 11분 밖에 안 됐지만 겨울이라 이르게 진 해 + 우중충한 날씨가 겹치며 밤이 빨리 찾아왔다.
츠키지 시장, 글리치 커피에 이어 일본의 대형 문구점 '이토야'에 왔다. 평소 문구제품을 좋아하는 필자인지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곳.
들어가 보면 이렇게 펜에 이름을 새겨주는 분이 계신다. 입구부터 범상치 않다.
필자가 환장하는 마그넷도 있다. 왜 지금에서야 '후지산 모양 마그넷을 사 와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오는지.
아까 카페에서 잠시 쉬긴 했지만, 배가 고픈 데다 이날까지 4일간 이어진 강행군(모두 2만 보 이상 걸었다)으로 인해 사실 걸음을 옮기기도 버거운 상태. 1층 카페에서 간식을 사서 구석에서 잠시 숨을 돌려본다.
배를 약간 채우자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조금 생긴다. 층수가 굉장히 높아 부담되지만 일단 되는 데까지 둘러보자.
힘든 관계로 매장 사진이 거의 없지만 층별 구조는 대개 이렇게 돼 있다. 문구류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그야말로 천국.
굉장히 특이한 모양의 '바이시클 카드'부터 접을 수 있는 컵 등등, 눈 돌아가는 아이템들이 한 두 개가 아니다.
그중 가장 탐이 났던 손바닥만 한 아코디언. 저래 보여도 가격이 꽤 사악한데, 차마 살 엄두는 나지 않으니 견본만 열심히 삑삑 가지고 놀다가 돌아선다(한 번 시작하면 주변의 시선이 집중되는 효과가 있다).
이 친구들도 책장에 올려놓을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 안 그래도 와이프한테 잡동사니 많다고 타박을 듣는 마당에 얘들까지 데려가면 무슨 소릴 들을지 뻔히 보인다. 결혼, 참 행복한데요... 행복합니다...
이후 긴자에서 대중교통으로 십여분 거리의 일본 최고층 빌딩, '아자부다이 힐스'로 넘어왔다. 도쿄의 유명 관광 스팟인 아트 뮤지엄, '팀랩 보더리스'에 들어가기 위함이었는데, 이미 예약이 다 찬 상태라 입장이 불가능했다(현장 입장권은 구매가 가능하지 않을까 해서 갔지만 이마저도 실패).
입구부터 이런 착시 현상을 볼 수 있게끔 만들어진 곳이라 내부가 더 기대가 되는데, 아쉽게도 이번에는 그냥 돌아서야 할 것 같다.
아쉬운 마음에 돌아보는 아자부다이 힐즈 지하.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곳이라 그런지 디자인에서 세련미가 풀풀 난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건너편에 불이라도 난 듯 오렌지빛이 강렬하다. 사이렌 소리는 안 들리는데...
알고 보니 도쿄타워의 빛이 내리는 비에 번져 보이는 것이었다. 사진으로는 다 담기지 않았지만, 실제로 보면 정말 불이라도 난 듯 진한 주홍빛이 하늘을 뒤덮고 있는 모양새다.
밤에 보는, 특히 비 오는 날의 도쿄타워는 이런 매력을 갖고 있구나. 야밤의 스카이트리보다 한층 강렬한 느낌이 좋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올 법한 암울한 세계인 '디스토피아'적인 느낌도 든다. 얼핏 <반지의 제왕>의 최종 보스, '사우론'의 눈이 번뜩이는 '바랏두르의 탑'이 연상되기도 하고.
그렇게 신나게 사진을 찍다가 저녁을 먹으러 야키토리 전문 식당, '도겐 롯폰기'(Dogen Roppongi)에 들어왔다. 그저 이 근처에서 가라아게를 판다기에 온 곳인데, 맥주로 피로를 쓸어내리고 경건히 식사를 기다려 본다.
옹? 근데 기본 안주가 꽤 맛나다. 그저 양배추에 참기름이랑 소금으로 간을 했을 뿐인데, 왜 맛있지. 원래 기본 안주가 맛있는 곳은 메인 메뉴도 맛있는 편인 만큼 급상승하는 기대감.
그리고 나온 가라아게. 이거지... 이게 가라아게지. 시간은 좀 걸렸지만 기다린 보람이 있는 비주얼이다. 맛이 미쳤다, 어마어마하다는 표현을 붙이기엔 약간 아쉽지만, 적어도 이번 여행서 먹었던 최악의 가라아게를 씻어내기엔 차고 넘친다. 이번 여행 버킷리스트 '맛있는 가라아게 먹기', 달성이다.
가라아게가 맛있으니 야키토리도 몇 점 시켜주는 것이 인지상정. 오른쪽은 닭껍질인데, 저렴하고 맛도 좋아서 의외였다(가격이 잘 기억이 안 나지만 120엔가량이었던 것 같다).
닭의 엉치살(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부위)과 닭날개(테바사키)도 차례로 시켜본다. 닭날개는 맛있는 닭날개 맛이고, 엉치살은 탱글탱글한 매력이 있다. 이것저것 더 시켜보고 싶지만, 생각보다 배가 부른 관계로 여기까지. 아자부다이 힐즈에 다시 올 그날을 기약해 본다.
나와서 역으로 가는 길, 저 멀리 빛나는 도쿄타워를 보고 있자니 이대로는 들어가기 아쉽다는 생각이 용솟음친다. 가까이 가 보자.
비구름이 걷혔을 때와 가려졌을 때의 도쿄타워. 그 모습이 전혀 다른 만큼 두 장의 사진을 함께 올려 본다. 화면으로도 충분히 그 차이가 느껴지시는지.
아무래도 더 높은 신형 랜드마크, 도쿄 스카이트리가 생긴 이후 상대적으로 매력이 떨어진 듯도 하지만, 밤의 경치만큼은 도쿄타워의 압승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시간을 내서라도 이 멋진 야경을 감상하러 와 보시길 권한다. 역시 뭐든, 좋은 건 크게 봐야 제 맛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