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글이 될 때
말보다 글이 편하고 좋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말을 하다 보면 내 감정과 생각의 널뛰기에 휩쓸리기 쉽다. 시행착오와 시간의 축적으로 그 강도와 횟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말로 인한 크고 작은 말썽은 여전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침이 마를 때까지 누군가와 수다를 떤 날은 입 밖에 냈던 말들을 곱씹고 곱씹는다. 해도 되는 말, 굳이 하지 않아도 됐을 말, 그리고 당최 왜 했는지 모를 말들을 분류해 가며 스스로를 꾸짖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어김없이 다짐하곤 한다. 역시 말을 아끼자고.
이 과정에서 오는 생각들을 차분히 글로 적어둔다. 그렇게 하면 이 경험은 말을 더 잘하고 덜 하기 위한 하나의 좋은 연습이 된다. 그리고 다음의 내 말들은 조금 더 다듬어진다.
한편으로는 이런 때도 있다. 곧바로 말로 전하고 싶을 때. 정리되지도 않은 흩어진 단어들을 그러모아 감정과 생각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글로 적기에는 오히려 모자란 그런 순간 말이다. 그때는 표정이 꼭 필요하다. 내 표정과 상대의 표정 모두. 그래서 마주해야만 한다.
이렇게 나눈 대화는 그날 자기 전 꼭 글로 적어둔다. 희한한 건 이런 경우의 대화는 대부분 흐릿하게 남는다. 그래서 다른 단어와 다른 문장으로 기록한다. 중요한 건 의미는 같다. 상대와 나의 말들이 다른 단어와 문장으로 선명해지면서 부활하는 순간이다.
내가 쏟아낸 무수히 많은 말들이 수많은 글이 된다. 어떤 말은 다짐의 글이 되고, 어떤 말은 통찰의 순간으로 이어져 깨달음의 글로 남고, 또 어떤 말은 소중한 추억의 글이 되기도 한다.
말이 글이 될 때 새로운 종류의 에너지가 만들어진다.
말이 말로 끝났을 때보다 글로 끝났을 때 좀 더 나은 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