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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나무 Oct 15. 2024

읽다가

읽으면 된다

책의 순기능은 많지만 동기를 부여해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준다던가 갖은 힘든 마음을 다독이고 치유하는 것이야말로 책의 크나큰 역할인 것 같다. 그중에서도 나는 책의 다독거림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언젠가 마음이 고장 난 적이 있었다. 여러 원인이 있었을 테지만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됐고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마음이 뭉그러져 있었다.

그땐 눈앞의 모든 사람을 보며 슬퍼했다. 가족, 지인들 그리고 스쳐가는 사람들까지 보이는 대로 슬펐다. 

심지어 무생물인 것들을 보면서도 그랬다. 어느 날은 식당에 갔는데 아무렇게나 놓인 의자를 보며 목이 멜 정도였다. 


그런 내 감정을 드러내는 게 끔찍하게 싫었기에 매일 몇 겹의 가면을 썼다 벗었다 했다. 그러다 보면 실제로 잠깐 괜찮아지기도 했지만 금세 고장 난 감정으로 되돌아왔다. 그러고 나서는 얼굴이 더 일그러져 보이곤 했다. 


너무 무기력해져서 의욕도 없어지고, 생기도 잃었다. 


나는 평소 우울이라는 단어를 일상에서 종종 써왔다. 일이 틀어져도 ‘아... 우울해’, 기분이 조금만 나빠져도 ‘짜증 나, 우울해’라고 습관처럼 내뱉었다.

그런데 진짜 우울감이 이런 거구나 싶었던 그때, 오히려 우울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가 어려웠다. 너무 힘들었지만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터져 나오는 우울감을 방어도 못한 채 안으로 욱여넣다가 더는 안 되겠어서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다. 여러 가지를 시도해 봤지만 역시 책에 기대는 게 가장 나았다. 책은 우울감이 시작되고 나서도 계속 읽고 있었지만 일반적인 소설이나 수필은 별로 도움이 되진 않았고, 특별히 명상을 주제로 한 책을 깊이 들여다봤다. 관련된 책으로 운동을 시작했고, 또한 명상도 시작할 수 있었다. 결과는, 꽤, 좋았다.


내 경우에 일시적이었을 수도, 우울증이라는 병으로 따졌을 때 상대적으로 가벼웠을 수도 있었겠으나 당시의 나로선 너무 두텁고 거대한 벽과 마주한 기분이었다. 이걸 넘을 수도, 쓰러뜨리거나 부술 수도 없는 막막함도 있었다.


힘든 순간마다 자주 책에 기댔고, 책을 읽으며 뭉쳐진 생각을 글로 써서 풀어내곤 했다. 그리고 깊은 우울감과 허무감으로 힘들었던 그때, 그 시간들을 겪으며 책에 기댔던 것이야말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읽고 생각하고 내용 중 어떤 것들은 행동으로 옮긴다. 방법이 있고, 방향을 알려주니 책이란 것은 잘 골라서 제대로 활용하기만 한다면 때에 따라서 훌륭한 치유제가 된다. 


책의 순기능을 맹신하는 나는 툭하면 읽는다. 그게 뭐든. 그러면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다 보면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새에 많은 것들이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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