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가을의 문턱이 유난히 높았던 것 같다.
여름이 하도 느리게 흘러가 억울할 지경이었다.
가을이라는 계절을 좋아하게 된 지는 그리 오래지 않다.
한 계절에서 다른 계절을 가기 위해 잠시 거치는 시기일 뿐이었다, 가을은.
단풍이 예쁜 것도 몰랐고, 추운 게 아닌 쌀쌀한 정도의 날씨는 시원하다기보다 스산하게 느껴졌다.
가을하늘이 높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그저 공허해 보일 뿐이었다.
가을이 아쉽게 느껴지던 어느 때부터 낙엽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나뭇가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갖은 색의 나뭇잎들을 보며 연신 휴대폰에 담는다.
외출하고 집에 오는 시간은 점점 길어져 집 주변을 몇 바퀴 돌아 두 세배 이상 걸린다.
전화를 걸어 “참 좋은 계절이야”라고 말하는 게 행복하고, 상대에게서 가을의 색을 향한 감탄의 소리를 듣는 게 유쾌하다.
거실창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속 단풍이 매 번 감사하다.
그것들은 보고 있자면 머리와 가슴에서 별의별 문장들이 마구 쏟아진다.
문장들을 주워 담으며 황홀해서 실실 웃음이 난다.
며칠에 걸쳐 바뀌던 나뭇잎들의 색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바뀐다.
풍성하던 잎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듬성듬성해지면 덩달아 내 마음이 조급해져 온다.
이 짧고도 좋은 계절이 눈앞에서 사위는 게 아쉽기만 하다.
여름과 겨울 사이, 나와 세상의 가장자리가 더 커지는 것만 같은 가을.
올 가을이 남기고 갈 흔적이 몹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