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안 올 땐 버릇처럼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처음에는 누워서 생각난 것들을 찾아보거나 일정을 체크하다가 여러 SNS 속 영상과 글을 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알고리즘에 빠져들어 핸드폰을 놓기가 힘들어진다. 몇 시간은 우습게 흘러가 있어 깜짝 놀랄 때가 왕왕 있기도 하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눈으로 훑었음에도 되짚어보면 남는 게 거의 없다. 시간 낭비의 지름길이라는 걸 알지만 핸드폰 속의 넘쳐나는 볼거리들의 유혹은 역시 이기기 힘들긴 하다.
요즘은 잠이 안 올 때면 핸드폰 대신 책을 집어 든다. 그저 핸드폰 대신 책을 바꿔 드는 것일 뿐인데도 꽤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어쨌거나 억지로라도 잠들기 힘들 땐 침대에서 벗어나 거실로 나온다. 책을 읽기 위해. 그럴 땐 소설은 피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소설은 예열시간 없이 금세 내용에 빠져들게 된다. 흥미롭게 읽다 보면 새벽 세네시까지 다 읽고 자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에 핸드폰만큼이나 내게는 위험하다. 잠이 안 와서 책을 읽다가 중간에 졸린데도 잠을 안 자는 어리석은 상황이 야기된다.
그래서 읽다가도 쉽게 멈출 수 있는 책으로 고른다. 에세이나 자기개발서를 주로 읽는데 다음 내용이 궁금하긴 해도 끝까지 읽으려는 고집은 안 생기고, 새벽 풍경을 힐끔거릴 만한 틈도 생긴다. 바로 이 시간 때문에 책을 집어든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바깥을 보는 이 틈새의 시간 때문에.
책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면 꼭 세상이 멈춘 것 같다. 특히 바람 한 점 안 부는 날에는 나뭇잎조차도 안 부대껴 거대한 사진 속 프레임 안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다. 특히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빗소리가 어찌나 아름답게 들리는지.
건축물과 자연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낮만큼이나 다양한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옆 아파트 단지에 앰뷸런스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며 누군가의 안녕을 빌기도 하고, 고요 속에 갑자기 거침없는 속력으로 달리는 차를 보며 깜짝 놀라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멈춘 듯한 세상에서 유유히 걷는 사람을 보며 이 새벽에 어디에서 오는 걸까, 혹은 어디로 가는 걸까를 궁금해하다가, 이상한 모양새로 횡당보도를 건너는 사람을 보며 혼자 킥킥대기도 한다.
가끔은 혼자만 깨어 있는 게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멀리 뿌옇게 보이는 신호등 불빛에 왠지 모를 위안을 얻기도 한다.
그런 틈새의 시간을 틈틈이 누려가며 잠 못 드는 밤에 책을 읽는다.
창밖 풍경을 곁들인 새벽 독서의 시간이 참 맛깔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