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분리수거의 배신
플라스틱은 플라스틱 칸에, 유리는 유리 칸에 넣어야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분리수거를 잘한다. 그런데 다 재활용이 될까?
생활필수품이라는 것들이 있다. 말 그대로 없으면 생활이 되지 않는 제품들을 일컫는다. 두루마리 휴지, 여성에게는 생리대, 칫솔, 치약 등이 있다. (사람에 따라 생필품에 대한 범위가 조금씩 다르다) 샴푸 역시 필수품의 범주 내에 들어가는 아이템인데, 이 샴푸통이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헐? 왜! 플라스틱에다가 분리수거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 네. 아니었다고 합니다.
샴푸통은 다양한 이유로 재활용이 어렵지만, 그전에 분리수거부터가 일이다. 다 쓴 샴푸통을 버릴 때 나는 주로 몇 번 헹궈낸 다음 플라스틱으로 분류가 된 곳에 그대로 버리고는 했다. 하지만 샴푸통이 재활용되길 원한다면 통째로 버리는 행위는 멈춰야 했다. 분리수거, 그렇게 하는 게 아니랜다.
먼저 샴푸통을 정말 깨. 끗. 이 씻어야 한다. 거품과 미끈거리는 게 사라지도록. 쉽지 않은 일이었다. 헹궈도 헹궈도 거품은 계속해서 나왔고 나중에는 물통을 닦는 솔까지 가져와 그걸로 안쪽을 닦아냈다. 그러니까 거품이 '덜' 나왔다. 거품이 없어졌다면 또 해야 할 일이 있다. 펌프의 분리이다. 샴푸통 속 작은 펌프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 샴푸를 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특한 장치이지만, 버릴 때에는 이만한 애물단지가 없다. 스프링, 동그란 알맹이, 고무 등 플라스틱이 아닐 수밖에 없는 것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이것들을 다 분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샴푸에 따라 겉에 라벨지가 붙어 있는 것들도 있다. 백색의 샴푸통 위에 비닐을 씌워 브랜드와 샴푸 종류를 알린다. 뒤에는 빼곡한 성분과 주의사항 등이 적혀 있는 비닐 라벨지도 떼어내면 그제야 분리수거 준비가 끝난다. 분리수거가 끝이 아니라 준비가.
분리수거 이만큼 잘했으니, 재활용 다 되겠지?
아니요. 그렇지 않더라고요.
플라스틱에서도 가장 재활용률이 높은 것은 무색의 페트병이다. 활용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색이 들어간 플라스틱의 향연인 샴푸통은 경우가 다르다. 분리수거를 열심히 해서 순수한 플라스틱만 버린다고 하더라도 재활용이 될 확률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진한 유색의 플라스틱은 추가적인 공정이 들어가며 결과물의 품질도 낮은 편이다. 그러니 굳이 업체 입장에서는 재활용을 할 이유가 없다. 페트병도 마찬가지. 무색 페트병과 달리 유색 페트병은 재활용의 질이 떨어져 저급 솜이나 고체 연료로 사용되는 횟수가 빈번하다.
살짝 억울했다. 21살부터 자취를 하면서 분리수거만큼은 제대로 했다고 자부했다. 내가 만들어내는 쓰레기는 포장, 배달, 기타 생활쓰레기 정도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제대로 분리를 하지 않은 샴푸통과 린스 통은 재활용의 문턱까지 가보지도 못했다. 이 정도면 국가에서 재활용하는 방법 대대적으로 알려야 하는 거 아니야? 사기그릇이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것도 나는 아이가 둘 있는 동료 직원분에게 듣고 나서야 알았다. 그거 다 유리로 분류하는 거 아니에요? 예. 이것도 아니었다.
샴푸를 안 쓸 수는 없잖아.
있지. 너 샴푸바라고 들어봤어?
비누를 안 쓴 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간다. 아예 쓰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고. 내 돈 주고 비누를 사서 쓴 적이 언젠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선물용으로 치킨 다리 모양과 푸릇한 소주 모양의 비누를 주문해 본 적은 있다. (하지만 선물 받은 그 누구도 그것들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깝다고) 내가 샴푸바를 알게 된 것은 간단했다.
아이디어스 다이아몬드 손까지 갔던 만큼 수제품에 혼을 팔았던 적이 있다. 최근 들어 시장조사한다고 아이디어스를 더 자주 들어가곤 했다. 혹여나 샴푸도 파나 싶어서 검색했더니 유레카! 샴푸바가 있었다. 샴푸바라고 하길래 그냥 머리를 감는 비누인 줄 알았다. 생긴 건 일반 비누와 비슷하지만 내용물이 달랐다. 샴푸와 비누를 우리가 같이 사용하지 않듯이, 샴푸바는 샴푸를 고체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과 같았다.
안 그래도 살면서 매일 쓰레기를 만드는데 6개월에 한 번씩 재활용 안 되는 쓰레기를 또 내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더불어 샴푸바의 후기가 상당히 괜찮았던 것도 샴푸바를 구매하는 데에 영향을 끼쳤다. 샴푸바는 일반 샴푸랑 다른 점이 딱 하나 있었는데, 바로 헹굴 때 머리의 뻣뻣함이다. 일반 샴푸는 각종 첨가물을 넣어서 헤어의 컨디셔닝제 역할도 함께 한다. 그러나 샴푸바는 그런 기능이 없으며, 각 샴푸바에 따라서 인공 계면활성제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더러 보았다. 어찌 보면 머리가 뻣뻣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이전부터 천연샴푸를 쓰던 나는 별로 위화감이 없었다. (천연샴푸도 무지하게 뻣뻣해지는 편이다.)
시기가 좋아서 샴푸통이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 날에 바로 샴푸바를 주문했다. 코딱지만 하게 작았지만 꽤 오래 썼다. 머리가 단발인 것도 영향이 있겠지만, 하루 거의 두세 번 정도 머리를 감는 것 치고는 양이 많았다. 일반 샴푸 500~600ml 정도라고 하니 고놈 참 작고 꽉 찬 물건이었다.
샴푸바의 단점도 있다. 샤워하는 공간에 따로 비누받침대가 없으면 보관하기가 어렵다는 점. 하지만 이건 비누라는 아이템의 고질적인 문제이니 내가 해결할 수 있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거품망을 이용.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공중에 매달려서 살짝 말리고는 했다. 날이 좋은 날에는 빨래 널어놓는 곳에 걸어놓는 것도 비누의 단단함에 도움을 주었다.
올해 여름 샴푸바를 구매한 다음 꾸준하게 샴푸바를 사용하고 있다. 환절기만 되면 건조해서 뒤집어지던 예전과 다르게 요즘은 살짝 건조해져도 두피가 뒤집어지지 않았다. 인공 계면활성제가 들어간 제품은 겨울철 우리의 두피를 더 건조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샴푸통, 제대로 분리수거해도 재활용하기가 어렵다면 아예 안 써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