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딘가에는 써먹겠지
멍 때리는 콘텐츠를 생각했었다. 아니, 멍 때리는 콘텐츠를 만들었었다. 멍 때리며 볼 잔잔하고 소소한 풍경 영상이랄까. 유튜브에 올릴 심산이었고, 이 생각이 처음 들었을 땐 '나 천재 아냐?!' 하며 잠을 설쳤었다.
근데 뭐 이미 예상하셨겠지만, 천재도 바보도 뭣도 아니었다. 왜냐면 존재감 없는 콘텐츠였으니까. 콘텐츠가 내뿜는 그 무쓸모함. 사람들이 찾지 않아, 거미줄만 늘어진 콘텐츠란...
'나는 쉴 때 보통 뭘 하지?'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운이 나쁘게도 '멍 때리기'를 생각했던 것이다.
'아! 나, 풍경을 보면서 멍 때리는 걸 좋아했었지!'
분명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 비슷한 콘텐츠를 바라는 사람들이 지구촌에 그래도 몇은 있겠지! 잘 되면 조회수도 꽤 나올 거고, 광고 수익도... 그런 장밋빛을 상상했었다.
아침이건 밤이건 또, 새벽까지 카메라를 들고 찍었다. 한강공원 풍경을 영상으로 담고 보라매공원을 찍고, 어느 다리도 찍고 그랬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무슨? 이런 표정을 지었던 것 같지만 꿋꿋하려고 노력했다. 부끄러워지려고 할 때마다, 행동이 소극적이게 될 때마다 마음속으로 '나는 기이한 예술가다!' 하며 다잡았다. 그럼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몇 개의 촬영 영상 소스가 나왔고, 영상 앞에 제목만 탁! 나오게 편집하고 업로드했다. 영상은 총 3개. 이틀 후에 보니 조회수가 각각 6회, 13회, 20회 정도였다. 제일 잘 나온 게 20회라니. 실망이 컸다. 나중에는 이 쓸모없는 영상이 알고리즘의 은혜를 받아 무언가 쓸모를 찾아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음~ 어림없죠! 그렇다. 정말 어림없었다. 한두 달 지나고 그 콘텐츠는 소리 소문 없이 비공개 처리 후, 삭제되었다. 지금은 풍경을 라이브로 내보내는 콘텐츠나 그와 비슷한 영상이 여럿 있는 것 같다. 주로 감성적인 타이틀과 함께 올라오는 듯.
그건 그렇고, 왜 '멍들다'에 멍도 멍이고, '멍하다'에 멍도 멍이지 싶다. 몸이 받은 고통에 의해 나타나는 게 '멍든 것'이라면, 마음이 받은 고통에 의해 나타나는 건 '멍한 것'이라 그런 걸까.
주워듣기로 뇌과학에서 멍하니 있는 건, 뇌기능을 높이고 뇌를 활성화시킨다고 하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려나. 저명한 크리에이터나 운동선수들도 멍하니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들었던 것도 같다.
그럼 또, '멍'과 '명상'의 차이는 무엇일까? 검색해 보면 관련 글이 꽤 나올 것 같지만.
내 뇌피셜로는 '멍'은 '무(無)'다. 거기에는 어떠한 방법적인 게 따로 없다. 그래서 연습이나 학습이 굳이 필요치 않다. 태어났을 때부터 몸에 새겨진 기능이니까. 외부 충격에 멍이 들듯이. 마음 충격에 멍을 주는 것이다. 물론, 쉴 때도 멍을 주기도.
그럼 '명상'은 무엇일까. 명상은 생각 다듬기, 자아 다듬기를 위한 일종의 의식이다. 자아를 마주하거나, 나의 생각과 만나는 의식. 그래서 명상할 때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공간, 음악, 향을 곁들이기도 하는 것 같다. 연습이나 학습도 필요하다. 익숙해지면 점점 몰입도가 올라간다. 아마도 '멍'과도 교집합적인 부분이 있겠지.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의 쓸모없는 생각들.
음, 불 끄자. 잠이나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