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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산 Mar 16. 2020

적을 이용하며 싸우는 현명한 방법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


(♬ Jeniffer Hudson - I'll fight)



적을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적의 행동에 동참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우리의 검을 시험하기 위해 우리 앞을 막아서는 자들이다. 그들을 존중해서라도 주저 없이 대항해 싸워야 한다. 누가 적인지는 우리 스스로가 정한다.

 - 파울로 코엘료


사랑하고 존중하며 맞서 싸우고, 그 대상조차 스스로 정하는 일. 파울로 코엘료의 이 조언을 한 편으로는 멋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건지 오랫동안 궁금했다. 그리고 저 말을 그대로 실현하며 살았던 사람을 알게 됐다.


"I dissent"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긴즈버그를 보면서 수시로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이 다큐의 중요한 시사점은 긴즈버그가 얼마나 멋지게 살았으며 살고 있는지, 얼마나 치밀하고 열정적이었는지, 얼마나 탁월한 업적을 이루었는지, 얼마나 숭고한 사랑을 했는지, 그게 얼마나 운 좋은 일인지...이기도 하지만, 긴즈버그의 인생을(성공을) 가장 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건은, 빌 클린턴도 말했듯,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과 아주 친한 친구로 평생을 보냈다는 사실이다.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1936~2016)


긴즈버그는 진보의 대명사였고 스캘리아는 보수의 대명사였다. 다큐에서도 소개하듯 스캘리아는 미국 헌법을 작성 당시의 기준으로 해석했다. 법에 나오지 않는 내용에 사법부가 관여하는 건 월권이라는 이유에서다. 200년 전의 기준을 어떻게 현대에 적용하냐는 비판에 대고는 현대적 적용은 현대인의 취향일 뿐 법의 정신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반대로 긴즈버그는 미국 헌법이 완전한 연합(union)을 위한 거라며, 작성 당시의 국민 범주엔 여성도, 아프리카계 미국인도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현대적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스캘리아가 얼마나 보수적이었는지 궁금해서 한 번 찾아봤다. 다큐에도 등장하는 1996년 버지니아 군사학교 판결. 당시 버지니아 주법은 여성의 군사학교 입학을 허용하지 않았다. 소송이 제기됐고 연방 대법원으로 올라갔다. 한 명이 궐석인 가운데 8명의 대법관 중 7명이 여성 입학을 옹호했다. 거기에 반대한 한 명이 스캘리아였다. 판결 과정이 법리적이지 못하다는 이유였다. 스캘리아는 실제로 여성이 약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Virginia v. Unites States 판결 이후 버지니아군사학교엔 여성들도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이 위헌 심사 대상이 된 법을 판단하는 기준은 '엄격·중간·합리'로 나뉜다. '엄격 기준'은 심사되는 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보일 때 적용된다. 법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증명을 요구한다. 법을 제정한 정부가 법의 필요성을 해명해야 한다. 해명에 실패하거나 다른 법으로 대체가 가능하면 위헌 판결이 난다. 헌법 정신을 위배하는 법에는 아주 엄격한 것이다. '합리 기준'은 반대다. 법이 기본권 침해와 거리가 있으며 그렇다면 입법부의 의도를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소송인이 직접 법의 명백한 위헌성을 증명해야 한다. 합리 기준이 적용되면 위헌 판결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중간 기준은 말 그대로 엄격과 합리의 중간에 있다.


스캘리아는 여성 입학을 옹호한 다수 판결의 심사 기준이 엄격과 중간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있고 엄격에 좀 더 가깝다며, 엄격에 가까우면서도 판결 내용이 국가의 중대한 이익에 부합하지 않고, 통상 성차별 문제에 적용됐던 중간 기준의 공식을 따르지도 않는다고 비판했다. 스캘리아는 성차별 문제는 엄격이나 중간이 아니라 합리 기준으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여성이 투표권을 가지고 있고, 투표를 통해 직접 의원을 선출함으로써 스스로를 위한 정치적 힘을 창출할 수 있고, 정치적 힘을 창출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여성은 엄격 기준을 규정했던 당시의 원리에 따르면 더 이상 기본권을 침해당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버지니아 주법이 문제가 된다면 버지니아 여성들이 주의회 선거 때 그 법을 폐지할 의원을 직접 뽑으면 되고, 그럴 수 있는데도 위헌 소송이 진행되고 엄격 기준이 마구 적용되면 사법부의 권한이 과대해지고 입법부의 역할이 축소되어 3권 분립 및 견제 기능이 해를 입으니, 소송인이 직접 그 법의 명백한 위헌성을 재판부에 납득시키라는 것이다. 법의 원리엔 아무 문제가 없으니 법을 철저히 따르라는 주장이다. 당장의 법이 당장의 차별을 해소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유념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다소 꼰대적 기질이 있다.


물론 그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스캘리아의 논리는 법리 기준을 자의로 바꾸며 해석의 재량권을 넓히면 법의 엄정함이 훼손되며, 법이 엄정하지 못하면 사회가 흔들리고 사람들이 무질서에 빠지며, 통제가 불가능한 혼란이나 폭력사태 같은 불상사가 가중될 수 있다고 걱정다. 스캘리아는 법이 아주 깐깐해야 한다고 믿었던 축자주의자였다. 축자주의자는 당연하게도 보수주의자다. 보수주의자는 당연하게도 약자의 권리 보호 및 옹호 같은 문제에 전향적이지 않고, 오히려 반대하고 괄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성이 약자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외쳤던 스캘리아는 그 밖에도 국민 의료보험 제도에 반대했고, 총기 소유와 창조론을 옹호했다. 자타공인 강경보수, 공공연한 수구꼴통, 성차별주의자였다. 그리고 긴즈버그는 그런 사람과 30년 동안 베스트 프렌드로 지냈다!


함께 오페라에 출연한 긴즈버그(왼쪽)와 스캘리아(오른쪽)
스캘리아가 농담을 하면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죠. 저를 꼬집으며 버텼어요.
- 긴즈버그는 엄청 멋지고 오페라를 좋아하죠. 안 좋아할 이유가 있어요? 물론 법적 견해는 빼고요. / - ㅋㅋ


긴즈버그와 스캘리아는 둘 다 오페라를 좋아했고, 같이 오페라에 출연하기도 했다. 대법관들끼리 여행을 가도 둘이서 쇼핑을 다녔다. 긴즈버그 커플과 스캘리아 커플은 수시로 어울렸고 넷이 함께 여행을 가거나 새해를 맞기도 했다. 스캘리아는 긴즈버그의 배우자 마틴--사회적 약자에 대한 스캘리아와 마틴의 의견은 역시나 정반대였다--이 죽었을 때 울었다. 스캘리아가 죽었을 때 긴즈버그는 스캘리아의 배우자 모린을 끌어안고 함께 울었다.




긴즈버그는 스캘리아를 좋아하지만 가끔은 목을 졸라 죽이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건 스캘리아의 법 해석과 판결문이 신랄하면서도 엄청나게 치밀하며 논리적 완결성이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위에 소개한 버지니아건에 대한 스캘리아의 반대 의견만 봐도 그렇다. 허점도 빈틈도 없다. '여성은 어떤 존재인가'(또는 '축자주의는 정당한가')라는 근원적 물음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그의 논리에 침입할 수 없고 작은 생채기도 낼 수 없다. 그런데 근원적 물음은 주로 법의 테두리 밖에 있다. 그래서 스캘리아의 법적 논리는 무적의 성이 된다.


긴즈버그가 스캘리아를 아주 훌륭한 법관이었다고 평가한 이유는, 스캘리아가 목을 졸라 죽이고픈 라이벌이었기 때문이었다. 긴즈버그가 대단한 사람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적을 그저 적으로 두지 않고 자신의 성장에 이용했다. 긴즈버그는 자신의 최종 판결문이 초고보다 훨씬 나아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스캘리아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스캘리아는 긴즈버그의 판결문이 명확한 법리적 기준이 된다며 존경했다.


긴즈버그가 스캘리아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긴즈버그의 힘이다. 긴즈버그는 마틴이라는 멋진 인간을 반려자로 선택할 만큼 사람 보는 눈이 좋았는데도 스캘리아를 평생 친구로 삼았다. 그건 스캘리아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실한 근거가 되지만, 핵심은 긴즈버그였다. 스캘리아가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었던들 빌 클린턴과 긴즈버그의 팬들은 스캘리아와 친해지지 못했지 않은가. 나는 장애인은 약자가 아니므로 구태여 배려를 할 필요가 없다거나 '위안부' 문제로는 일본에 무엇도 요구할 수 없다는 논리를 아주 촘촘히 세우는 인간과 웃으며 지낼 수 있을까? 그러나 이념과 가치를 거의 완전히 달리하는 가장 치열한 적과 우정을 쌓는 법을 알았으므로 긴즈버그는 누구보다 용감하고 파격적이고 개혁적인 대법관이 되어 더 많은 사람을 법으로 구제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둘의 우정은 보기 드문 희귀한 현상 또는 기적으로 간주되며 둘이 어떻게 친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분석도 많다고 한다.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그들의 관심사와 취미가 비슷했고 성장 환경도 비슷했다는 것이다. 둘 다 오페라 팬이고, 뉴욕 외곽 출신이고, 법대 교수를 지냈고, D.C. 지역 판사였다. 서로의 이념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존중했으며 사석에선 공적 대화를 절대 하지 않았던 덕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그런 해석은 표면적이며 설득력도 없다. 그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평생 친구로 지낼 수 있었던 건, 취향이 비슷했거나 이념이나 가치지향을 존중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정도 이유라면 다른 사람과도 절친이 될 수 있었다.


긴즈버그와 스캘리아가 평생지기가 된 건 법과 사회에 대한 가치관이 같았기 때문이다. 둘 다 법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 있었고 서로가 그러하단 걸 알았다. 법이 아주 많은 것들을 지킬 것이며 또 구제할 거라는 믿음, 매일같이 그 믿음을 증명하고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법을 대하는 성실함, 자신의 믿음을 현실로 구현해내고자 하는 법관으로서의 헌신, 그리고 나의 라이벌도 마찬가지라는 인식, 그게 둘을 친구로 만든 것일 테다. 영화에서 나온 말처럼, 그들은 서로 물고 뜯었지만 그걸 즐겼다. 늙은 남성 판사들을 유치원생 보듯 했던 긴즈버그가 스캘리아만큼은 진정한 인격체로, 존경하는 법조인이자 탁월한 인간으로, 평생을 함께할 최고의 친구로 삼은 까닭이다.


"위대한 법학자인 러니드 핸드 판사는 우리 헌법의 토대인 자유정신이야말로 성별을 떠나 모든 국민이 가장 최우선에 둬야 할 가치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끝까지 사법부에 헌신하겠습니다." 다큐 마지막에 등장하는 대법관 임명 시 긴즈버그가 했던 말, 이 말은 스캘리아가 삶과 법을 대하는 태도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던 것이다. 스캘리아는 "별을 쫓되, 결코 원칙과 타협하지 마라"라고 말했다. 긴즈버그의 마음가짐도 완전히 똑같았다. 그런 두 사람이 어떻게 친구가 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내가 그런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내 삶에 성실히 임하며 내 믿음에 헌신해야 한단 걸 안다.




이쯤에서 확실히 밝히자면, 이 영화를 준거 삼아 모든 페미니스트는 긴즈버그와 같아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아주 가소롭고 뻔뻔한 거라고 단언한다. 우리가 발붙인 땅은 긴즈버그와 같은 삶만 의미 있는 단선적인 세계가 아니다. 자신의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싸움의 방식을 자기 뜻대로 정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그게 심각한 폭력의 변주가 아닌 한.


할리우드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긴장감 넘치는 소재가 있는데 아직도 영화로 안 만들고 있다니!


이 다큐는 영웅 긴즈버그만 다뤘지 인간 긴즈버그를 묘사하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으므로 내 보잘것없는 평점은 3점을 넘지 않아야 하지만 한 명의 예비-긴즈버그-처돌이를 생산했으므로 특별점수를 받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적이고 어떻게 싸울지는 스스로 정한다. 나도 당당하게 반대한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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