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6학년 딸과 계획한 발리 여행이 코로나로 무산되고 어느덧 3년이 지났다. 딸은 벌써 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곧 3학년이 된다. 코로나의 긴 터널이 언제 끝나나 싶었는데 결국 딸의 중학교 시절 대부분이 코로나로 얼룩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마음 한 켠에 더 늦기 전에 딸과의 여행을 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었다. 더 늦으면 앞으로는 훨씬 가기 힘들지 않을까.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딸이 독립하게 되면 그때에도 아빠와 여행이 설레고 즐거울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아내를 두고 딸과 둘이만 여행을 떠난다. 엄마는 딸과 함께할 시간이 나보다 많을 것이고, 또 아내가 있으면 딸에게 아빠는 항상 두 번째이기 때문이다.
사춘기를 겪고 있는 딸과 7박 9일 여행, 한 번도 둘이 뭘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설레면서도 예측이 전혀 안된다. 순식간에 커버린 딸,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알고 있었던 것일까.
딸은 요새 고등학교 진학을 1년 앞두고 부쩍 고민이 늘었다. 인생의 방향에 대해 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문과일까, 이과일까? 어떤 고등학교를 선택할까? 아직 중학교 2학년을 겨우 마친 딸에게는 이런 결정이 버겁고 무거워 보인다.
그렇다고 내가 대신해서 그 결정을 내려주지 않을 것이다. 다만 딸이 조급해하지 않고 차분히 자기를 관찰하고 질문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을 통해 딸이 지금 닥친 현실에서 한 발짝 물러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딸이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길 기다릴 것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갈 때즈음부터 가족을 데리고 외국과 여행을 다니곤 했다. 아이들이 처음 비행기를 탈 때의 설레어하는 순간, 낯선 환경에서 서로를 더욱 의지하며 끈끈해지는 정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항상 선두에 서서 길을 찾고 다음 일정을 챙기며 가족을 돌보느라 여행이 주는 여유와 낭만을 즐기기 어려웠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도 이번 여행이 뜻깊다. 19년 전 아내와 첫 신혼여행을 떠난 후 처음으로 아내가 아닌 딸을 데리고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 낯설고 새롭다. 이번 여행을 통해 딸과 마찬가지로 나도 나의 삶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
그래서 오랜만에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일생에 한번뿐일지도 모르는 딸과의 여행의 순간들을 조금이라도 기록해보고 싶어졌다. 아들과 공부를 같이하면서 아빠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던 것처럼, 늦었지만 딸에게서도 아직 아빠의 골든타임이 지나가지 않았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