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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제라늄 Nov 25. 2019

남친 취향이 그렇게 중요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수많은 정보들이 있다. 뉴스, 연예, 푸드, 쇼핑, 패션·뷰티, 책·문화, 경제, 리빙, 건강, 그리고 기부까지, 정말 없는 게 없다. 덕분에 이것저것 많이 배우기도 하고 정보를 얻기도 한다. 그리고 잠깐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는 방 안에 앉아 손쉽게 쇼핑몰 구경을 한다.


쇼핑 항목에 들어가면 또 다른 별천지다. 뭐, 안 파는 것이 없다. 그 수많은 항목들 중에서 주로 나의 관심을 끄는 것들은, 프랑스 매장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예쁜 스타일의 다양한 옷이나 신발들이다. 나도 물론 여자니까. ^^


자,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견되었다. 모델들이 입고 있는 멋진 블라우스나 원피스 사진들이 즐비해서, 막 백화점에라도 들어온 듯 신이 나기 시작한다. 오호호~ 즐거워하면서 하나씩 자세히 보려 하는 순간, 그만 나는 콧바람을 픽 내뱉으며 얼굴을 찡그리고 말았다. 거기에는 이런 것들이 적혀 있었다.


<남친이 예쁘데...신상 득템해>

<남친 취향 저격...러블리 원피스>

<남친이 쓰러져...인기 폭주>


아! 나 진짜... 제목이 이게 뭡~니까!

순간 욱하는 불쾌함이 목구멍으로 치솟아 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막 혼잣말까지 한다.


‘아니, 옷 입을 당사자들의 취향은 상관없고, 남친 취향이 중요한 거야? 어이가 없네, 진짜!’


자기가 입을 옷 취향조차도 남친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다니, 여자들에 대한 자존감이나 존중이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이런 광고 문구에 오기가 생겨서 바로 그 상품을 클릭해봤다. 대체 얼마나 기절하게 예쁜가 보려고!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곳에서 남친 자빠뜨리게 생긴 옷은 정말 하나도 못 봤다. 내 취향이 이상한 걸까?


솔직히 나는 이 광고 문구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제 2020년을 바라보는 시대에, 여성들의 마음을 저런 저렴한 말로 유혹하려는 광고나, 혹시 진짜로 저런 기준으로 옷을 고르는 여성들이 있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 패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옷을 고르는 기준에는 보온 같은 기본적인 기능을 떠나 수많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의 옷 입는 취향만 봐도 그 사람의 성품이나 성격까지 추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권리를 왜 남친에게 넘겨주는가?


예뻐 보이는 것은 중요하다. 나도 물론 예뻐 보이고 싶다. 더군다나 남친이나 직장 동료들이 칭찬까지 해준다면 당연히 금상첨화다. 옷이 나를 돋보이게 해 주고 사람들의 칭찬과 더불어 내 기분이 좋아지고 그래서 발걸음에 더 자신감이 생긴다면 정말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한 가지를 질문하고 싶다.


내가 입고 있는 이 옷이 나를 대변하는가? 스스로가 이 옷 안에서 육체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편안하고 만족스러운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며 이 모습이 정말 나다운가? 어떤 브랜드고 가격이 어떤지 따위하고는 아무 상관없다. 이런 것들은 티 쪼가리 하나를 입을 때에도 할 수 있는 질문들이다. 남친에게가 아니고 누구에게?


나.자.신.에.게.


여기저기 눈치 보지 말고, 내 스타일로 갑시다! (Photo by Pixabay)


우리 회사에 3년간 커플이었던 친구가 있었다. 세 명이 함께 자주 어울리기도 했지만, 나는 여자 쪽이랑 더 친했었다. 늘 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던 그녀가 내가 입고 간 원피스와 부츠가 예쁘다고 칭찬을 했던 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키가 크고 늘씬한 그녀에게 물었다. 네가 스커트를 입으면 정말 예쁠 텐데, 그런 스타일은 안 좋아하냐고. 그녀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남친이 부츠를 싫어해. 그리고 내가 스커트 입는 것도 싫어해. 사실 나는 스커트도 좋아하고 부츠도 좋아하지만...”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한국도 아니고 여자들 드세기로 유명한 프랑스에서 프랑스 여자애가 그렇게 살고 있어서 더 놀랐던 것 같다. 그러더니 그 치마도 못 입게 하던 남자애, 딴 여자 만나서 그녀를 버리고 가버렸다. 아주 가차 없이.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처음에 섹시하고 도시적인 패션과 분위기에 끌려놓고 사귀면서 이거 안 된다 저거 안 된다 완전 조선여자 만들어 놓더니, 어느 날 그 남자는 본인 표 조선여자를 헌신짝처럼 차 버리고 다시 초미니의 섹시한 새 여자를 만나 떠나갔다는 얘기는 시대를 불문하고 들려온다.


여성분들에게 진심으로 애정을 담아 하는 말인데, 왜 남친을 주인처럼 모시는가? 그들이 무슨 권리로 이거 입어라 저거 입지 마라 하는가? 그대의 몸이고, 옷이며, 그대의 선택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마라. 이 일이 누군가를 해하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미니스커트가 좋으면 당당하게 입어라. 지나치게 기괴하거나 벌거벗고 다니는 거 아닌 이상,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따위는 묻지도 마라. 입어서 내가 기분 좋아지는 패션이 바로 내 취향이고, 더 나아가 내 에너지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그런 개인의 취향까지 자기 맘대로 바꾸려 하는 사람 말고, 있는 내 모습 그대로 존중해 주는 사람을 만나라. 장담하는데, 그런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스물 다섯 살의 어느 날, 함께 공부하던 선배가 저녁으로 뭘 먹고 싶냐고 물어왔을 때, 나는 ‘전 아무거나 괜찮아요, 선배님은요?’라고 대답했었다. 그랬더니 이 남자, 나이를 25살이나 먹어가지고 음식 하나 선택하는데 자기 취향도 없고 주장도 없냐면서, 세상에 다시 없을 면박을 주는 것이었다. 솔직히 그 순간 적잖이 충격을 받았고 창피해서 얼굴까지 화끈거렸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백번 천번 맞는 말이었다.


나는 우리들이 자주 자신의 고유한 취향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를 바란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연애를 하든 짝사랑을 하든 그 상대방에게 쏟는 정성은 말도 못 하게 깊다. 더도 말고 딱 그 반절만 해보자.


나를 좋아해 주기를 바라고, 그 사람의 마음에 들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 상대의 자리에 나 자신을 앉혀보자.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의 마음에 들도록, 그런 나 자신의 취향을 연구해보자. 머지않은 순간, 입고 먹는 취향을 넘어 그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견고한 삶의 취향까지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남친 쓰러뜨릴 옷 같은 거 안 사 입어도 눈이 부시도록 멋질 것이다!


Let it go~ Let it go~ (Image from 겨울왕국_1)


세상을 향한 다정한 시선을 씁니다.

- 파리제라늄_최서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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