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더이상 하루키의 신작을 읽지 않게 된 것은 7, 8년 전이다. 그 즈음 나는 하루키의 새 책에 잘 몰입이 되지 않았다. 몇번이고 소파에 앉아 설레는 마음으로 새 책의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매번 몇장 읽지못했다.
갓 태어난 둘째와 큰 아이를 건사하면서 회사에 다니던 당시의 나에게 무라카미 하루키는 더이상 섹시하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에 나는 더이상 매료되지 않았고 심지어 한심하게 느껴졌다. 쉰소리처럼 들렸다. 그렇게 하루키와 헤어졌다. ‘이제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겠어.’ 라고 생각했다.
아쉽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내 삶에서의 우선순위가 달라졌다. 아이를 얻은 대가로 하루키를 더 이상 읽을 수 없게 되었다. 아끼던 정부와 헤어지듯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선택해야한다면 버려지는 쪽은 당연히 하루키였다.
7년이 지난 봄의 오후.
어떤 분이 자신이 꼽은 하루키의 최고 걸작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지금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
서점에 가서 꽤나 두꺼운 책을 사들고 돌아왔다.
열 여덟, 열 일곱 소년과 소녀가 나무 아래 입맞춘다.
어느 날 연락이 끊어진 소녀를 찾아 벽 안의 세계로 들어간 소년의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어진다.
어둡고 기묘한 도서관. 그 곳에서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너를 만난다.
하루키의 판타지. 그리웠던 이 긴장감.
현실과 어떤 접점도 가지지 않는 이야기. 오직 소설 속에서만 의미있는 인물들과 사건들.
분명 그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세계들은 어떤 은유도 아닌 모든 것이 실제하는 것들이다. 꿈속이든 다른 차원이든 어떤 형태로든간에 어딘가에 실존하는 세계다. 나는 알 수 있다. 내 꿈에 존재하는 세상같은 것이라는 것을. 하루키도 늘 그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산책하는 길에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를 오디오 북으로 들었다.
이사한 곳에 수영장이 없어서 니혼 대학 운동장에서 400m 트랙을 달리기 시작했다는 하루키. 원래 주의하지 않으면 살이 찌는 체질이라 저체중의 안정 상태를 위해 노력했던 하루키. 하루에 60개비의 담배를 피우던 하루키. 더 달리고 싶다는 자연스러운 욕구때문에 금연을 하고 마라톤까지 출전하게 된 이 지독한 사람.
나는 그의 꿈속으로 다시 걸어들어간다.
쉽게 놀라는 법 없이 태연한 주인공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문득 이 곳에 다시 오게 되어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