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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림 Oct 22. 2023

어느 날 방광이 파업했다 (정신과 약 부작용)

#17 <제가 우울증이라고요? 어쩐지...>

급성 요폐가 오다

오밤 중 화장실에 가고 싶어 잠에서 깼다. 화장실에 가서 평소와 같은 자세로 앉았다. 이상했다.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분명 방광이 가득 찬 것이 느껴지는데 말이다. 세면대에 물을 틀어놓아 보았다. 조용히 물소리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방광염이다 싶었다. 평소에 무리를 했을 때 몇 번 방광염에 걸렸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 날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다음 날인 3월 22일, 병원에 가서 방광염 진단을 받았다. 약을 처방받아 왔다. 증상이 명확하게 호전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번 방광염은 유독 심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3월 26일 토요일, 아침에 열이 있는 것 같았다. 체온을 재니 37.4도였다. 두통과 몸살 기운이 있었다. 혹시 몰라 코로나 키트도 해봤으나 음성이었다. 남은 방광염 약과 타이레놀을 입에 털어 넣고 나왔다. 그날은 운전면허 주행 교육과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커피와 단 음식으로 연명하며 겨우 시험을 통과했다. 집에 오는 길, 사물이 겹쳐 보이는 어지럼증이 시작됐다. 오한이 밀려왔고 몸살 기운이 다시 올라왔다. 겨우 집에 도착해 약을 먹고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3월 27일, 두통과 어지러움이 지속되었고 식은땀이 났다. 화장실에 앉아도 여전히 소변을 보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3월 28일, 어지러움에 메슥거림까지 시작됐고 위랑 장이 욱신거렸다. 무른 변을 보기 시작했다. 내과 진료를 보러 갔다. 아마 방광염 약 때문인 것 같다는 이야기와 함께 소화기 약을 처방받아왔다. 3월 초에서 중순까지 2주 정도 과로를 했는데 그래서 이렇게 컨디션이 안 좋은 걸까. 그래도 이렇게까지 안 좋을 수가 있나.


3월 31일 새벽, 마침내 문제가 터졌다. 요의를 느껴 잠에서 깼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도저히 소변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물을 틀어놓아보기도 하고 변기 위에 올라가 보기도 하고 별의별 짓을 다해도 통하지 않았다. 20분 정도를 씨름하다 다시 누웠다가 시도해도 방법은 없었다. 큰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비뇨기과를 검색했다. 병원이 여는 오전 9시까지는 4시간 정도 남았다. 꽉 찬 방광과 함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아침이 밝았고 재빠르게 병원으로 향했다. ‘정말 평생 올 일이 없을 줄 알았던 곳인데’라고 생각하며 ‘ㅇㅇ비뇨기과’의 문을 당겼다. 카운터의 남자 간호사들은 나를 보고 약간 놀란 듯하더니 재빠르게 여자 간호사를 불러왔다. 소변이 안 나온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대기실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조금 지나자 중년과 노년의 남성들이 하나씩 도착했다. 매번 호기심 어린 시선이 나에게 내리 꽂혔다.

내 이름이 호명되고 사방이 흰 벽으로 된,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큰 창이 있는 방에 들어갔다. 아까의 여자 간호사 분이 들어오셨다. 그는 굵은 튜브 하나를 꺼내 들었다. “카테터를 해야 되는데 조금 많이 아프실 거예요.” 그 말인 즉 자연적으로 소변을 볼 수 없으니 인위적으로 요도라는 얇은 관 안에 굵은 튜브를 삽입해서 소변을 빼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도뇨가 시작되었고, 그건 살면서 경험한 고통 중 정말 역대급이었다. 너무 기분 나쁘게 신경을 거스르는, 찌르는듯한 통증이었다. 고통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대기실에서 대기해 달라는 말을 듣고 엉거주춤 밖으로 나왔다. 적어도 배에 있던 무지막지한 팽만감이 해소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다시 이름이 호명되고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이 되게 안 좋아요. 소변이 아예 안 나오는걸 ‘요폐’라고 불러요. ‘갑자기 생겼다’ 해서 ‘급성요폐’라고 부르고요. 일단 젊은 여자들은 원래 요폐가 안 와요. 여자들은 나이 들어도 요실금쪽으로 오죠. 요폐는 나이 많은 중년이나 노년 남자들한테나 오는 거예요. 그래서 본인 나이대의 여성이 급성 요폐가 오는 건 아주 드물고요. 뭐 약 먹는 거 있어요?”

“아... 정신과약 두 가지를 최근에 바꾸기는 했어요.”

“그거네. 무조건 그거예요. 오늘 당장 그 병원에 얘기하세요. 약 끊어야 된다고. 지금 소변을 1200ml를 뽑았어요. 방광이 원래 근육이라서 늘어나는데, 지금 이건 근육이 거의 제 기능을 못한다는 거예요. 아주 늘어나버린 거죠. 이게 오래가면 근육이 늘어나서 아예 안 돌아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냐? 아까 뽑았던 것처럼 화장실 갈 때마다 본인이 소변을 뽑던지 평생 소변줄 달고 살아야 돼요. 그래서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지금 소변줄을 달아야 돼요. 그 링거 맞을 때 쓰는 거 같은 가방이랑 소변줄이랑 연결해서 방광이 쉬도록 도와줘야 돼요. 최소 한 달은요. 약은 무조건 끊고요.”

나는 공포와 혼란에 휩싸였다. 평생 소변줄을 하고 살아야 할 수도 있다니. 거부감이 너무 커서 일단 소변줄은 안 하겠다고 말했다. 혹시나 약 때문이더라도 약을 끊으면 금세 돌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의사는 평생 소변줄을 달고 살고 싶으면 그러라고 했다. 터덜터덜 병원을 나와 정신과에 전화를 걸었다. 급성요폐가 와서 약을 끊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자 ‘드문 확률이라고 생각되지만 약 때문일 수 있으니 복용을 중단해 보라’는 건조한 답변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대학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봐야 할 것 같았다. 기운이 없고 무너져내리는 와중에 내가 병원을 알아보고, 진료를 예약하고, 설명을 듣고 검사를 하고, 맞다고 생각하는 정보를 감별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버겁고 힘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엉엉 울었다. 그날 밤 소변이 안 나오면 응급실을 가야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너무 불안했다. 의지할 사람이 하나도 없는 기분이었다. 맹목적으로 정신과 선생님을 믿고 먹었는데 그래서는 안 되는 건가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소변줄을 꼽다

4월 4일 월요일 새벽, 며칠 조금 괜찮은가 싶었던 증세가 다시 심각해졌다. 화장실을 갈 수가 없었다. 결국 자는 엄마를 깨워 응급실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구급차를 타봤다. 이른 새벽의 교통체증을 느끼며 ‘지금 내가 화장실 한 번 가자고 이렇게 구급차를 타고 40분 거리를 간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병원에서의 처치는 역시나 고통스럽고 빠르게 끝났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날은 다행히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집에 와서 잠시 자고 일어나니 또 요의가 느껴졌다. 하지만 한 번 카테터를 하고 나면 한동안은 그나마 호전이 되었던 이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3시간쯤 상태가 지속이 되니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동네 비뇨기과에 가서 소변을 뽑아내야 했다. 그 이후로 집에 오자 다시 소변을 볼 수는 있었지만 너무도 통증이 심했다. 하루에 카테터로 소변을 두 번 비워내야 해서 그런 듯했다. 화장실에 다녀올 때마다 기진맥진해서 나와야만 했다.


4월 5일, 그날은 대학 병원 진료를 보는 날이었다. 프레젠테이션을 앞둔 듯 철저하게 서류들을 정리해 갔다. 여태껏 먹은 약들의 처방전을 순서대로 정리하고 포스트잇으로 날짜와 그때 당시의 증상들을 빼곡하게 적어갔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 나의 서류꾸러미를 전달했다. 이렇게 준비를 해오는 사람이 드문지 선생님은 조금 당황하신 듯 보였다. 선생님은 서류들을 주의 깊게 보더니 최근 헤르페스나 그런 것처럼 몸에 뭔가 돋아난 게 있냐고 물어보셨다. 없다고 말했더니 역시 “이 나이대의 여성에게는 요폐가 잘 없는데 희한하다”면서 약을 처방해 줬다. 선생님도 정신과 약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냐고 했더니 그는 복용 중인 약이 많고 그중 최근에 바뀐 약이 있다면 그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일주일 뒤로 예약을 잡으며 다음 예약 전 또 요폐가 오면 비뇨기과에서 소변줄을 달 것을 권했다. 나는 그럴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4월 8일, 드디어 정신과에 갔다. 선생님에게 현재까지의 상황과 현재의 상태를 브리핑했다. 매번 응급실을 오늘 갈지 안 갈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 불안하고, 선생님들도 원인을 모르겠다고 하시니 혼란스럽고, 선생님들마다 다른 말씀을 하시니 힘들고, 소변줄을 차게 되면 활동에 어떤 제약이 있을지 몰라 괴롭다는 말을 전했다. 그날 처음으로 선생님의 눈에 눈물이 고인 것을 보았다. 선생님은 너무 안타까워하시며 몇 번을 거듭 미안하다고 하셨다. 너무 힘들었겠다고, 너무 무서웠겠다고 위로를 전해왔다. “두 약 모두 매우 적지만 요폐 부작용이 리포트된 사례가 있고 비뇨기과 선생님들 두 분이 다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아마 그 약들 때문이 맞을 것 같아요. 복용 중인 다른 약들이랑 상호작용을 일으켜서 그랬을 수도 있고요. 둘 중에 이 약은 반감기가 길어서 한 달은 증상 호전이 바로 안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한 달 먹은 걸로 방광 근육에 영구적인 문제를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우선은 그렇게 생각해요. 이건 제가 그렇다고 믿고 싶은 게 아니라 실제로 그래요. 어쨌든 제가 너무 미안해요…”

슬퍼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선생님을 위로해드리고 싶었다. “제가 정신과 약 말고도 먹는 약이 많은데 선생님이 어떻게 아셨겠어요. 제가 선생님의 케이스가 되어드릴게요, 얼른 저를 학계에 보고하세요! 논문 쓰셔야죠.”라고 말하자 선생님이 웃음을 터뜨리셨다. 그렇게 씩씩하게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사실 내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너무 무서웠다.


진료가 끝나고 서점에 들렀다. 평소에 눈에 들어오던 자기 계발서와 경영서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성공’, ‘돈’, ‘출세’와 같은 제목은 삶의 위기를 느낄 때 아무 쓸모도 없었다. 이것도 언젠가 지나갈까? 이것도 언젠가 내가 그런 적도 있었다는 에피소드로 말할 수 있게 될까? 정신과 진료와 관련된 책을 제작하면 거기에 가벼운 일화 하나로 들어갈까? 일에 너무 집착하던 나에게 교훈을 주고자 신이 내린 역경인가? 일을 열심히 하고 인정을 받아봤자 몸이 망가지면 무슨 소용이냐는, 그거에 집착하지 말고 나부터 챙기라는 뜻일까? 지쳐서 그냥 다 포기하고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번져갔다. 그럼에도 일상을 살아가는 씩씩한 마음- 활짝 핀 봄꽃을 한 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친절을 베푸는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끄집어내 보려 애썼다.


4월 9일, 결국 병원에 가서 소변줄을 꼽아야 했다. 끝까지 피하고 싶었지만 계속 화장실을 갈 수 없어 달리 방법이 없었다. 소변백을 다리에 차고 다녀야 했다. 이를 가리기 위해 통이 큰 치마를 입어야 했다. 걷기만 해도 고통이 심했다. 아파서 식은땀이 났다. 엉거주춤하게 몸을 말아야만 겨우 앉을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앉아있을 수 조차 없었다. 나이 서른도 안 됐는데 소변줄을 차고 있는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 화장실을 스스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인간의 존엄성은 생각보다 대단한 것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4월 15일, 피부과 약 때문일 수도 있다는 진료에 평소에 먹던 항히스타민제를 스테로이드제로 바꿨다. 그러자 간지러움에 잠에서 깰 정도로 심하게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소변줄이 움직이면 아파 테이프 두 개로 몸과 고정해 두었는데, 그 테이프를 붙인 자리가 붉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계속 같은 부위에 떼었다 붙였다 해서 자극이 된 것 같았다.

 

4월 18일, 소변줄에 조금 익숙해졌다. 피부의 가려움이 심해져 심하게 긁다 보니 여기저기에 멍이 들기 시작했다. 정신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었다. 눈물을 조절하기 힘들었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기억에서도 지워진 괴로운 날들이 지속됐다.


지나오긴 했지만

4월 22일, 소변줄을 한 지 2주가 지났다. 소변줄을 제거하고 경과를 보기로 했다. 오래간만에 스스로 화장실에 간 그날, 너무 다행히도 혼자서 볼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나의 방광이 회복을 한 것 같았다. 화장실 한 번 가는 일이 정말 감사하게 느껴졌다. 대학 병원에서 한 정밀 검사와 잔뇨 검사에서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드디어 나는 한 달 동안 지속된 지긋지긋한 급성 요폐 부작용에서 벗어난 것이다. 복용하던 정신과 약은 다른 약으로 바꾸기로 하며 사태는 마무리됐다.


이외에도 살이 찌고 시력이 나빠지는 등 크고 작은 부작용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급성 요폐가 가장 심각한 부작용이었다. 지금도 나는 종종 방광염에 걸린다. 방광의 감각도 조금 둔해진 것 같다. 화장실을 가야 하는 상태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예전만큼 예민하게 감별을 못해낸다. 영구적인 부작용까지는 아니어도 일종의 불편한 상태를 얻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정신을 치료하면서 생긴 일종의 흉터라고 생각하며 감내하고 있다.

사람마다 약이 작용을 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 약을 쓰기 전까지는 어떠한 부작용이 나타날지 모른다. 그래서 결국 먹어보고 부작용이 나타나면 다른 약으로 대체해 보는 방식으로 진행하게 된다. 대부분의 부작용은 영구적이지 않고 약 복용을 중단하면 호전된다. 그렇기에 이로 인해 약 복용 자체에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게 복불복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아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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