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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림 Oct 22. 2023

우울과 불안에서 살아남는 방법 1: 명상

#18 <제가 우울증이라고요? 어쩐지...>

우울증 치료에 있어 상담과 정신과 진료는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상담소와 병원을 들락거린다고 자연스럽게 병이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치료는 셀프이다. 나는 나의 정신과 선생님을 깊이 신뢰하고 의지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나의 구원자는 아니다. 세상에 나의 구원자는 나뿐이다. 약물 복용으로 무기력이나 자살 사고와 같은 주요한 증상이 어느 정도 호전된 다음에는 내가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최소 용량으로 줄인 후에도 나의 삶을 지탱해 주는 두 가지 방법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명상에 입문하다

이전에 내가 인턴을 했던 회사에서는 명상 열풍이 불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동료들은 본인의 명상 경험담을 공유하기 바빴다. 그들은 지방에서 열리는 디지털 디톡스 명상 캠프에 신청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인도에 함께 명상 프로그램을 들으러 가기도 했다. 명상만큼 나를 심드렁하게 하는 일도 드물었다. 그들이 왜 그렇게 명상에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 지루한 것을 하러 돈과 시간을 쓰는지 몰랐다.

호기심이 생겨 한 번은 다니던 요가원에 있는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았다. 강사는 명상의 원리에 대한 이론을 지루하게 늘어놓았다. 나는 거의 잠에 들 뻔했다. 이후에는 ‘걸어 다니는 감각에 집중하는 것도 명상일 수 있다’며 다 같이 걸어 보자고 권했다. 우리는 방의 벽면을 따라 빙글빙글 계속 걸었다. 따라 하면서도 속으로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생각했다. 다시는 명상 수업을 듣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정신과 선생님은 불안을 다스리는 데에 좋다며 잊을만하면 한 번씩 명상을 권하셨다. 하지만 나는 꿋꿋하게 명상과 거리를 뒀다.


그러던 어느 날 스웨덴에서 온 한 친구를 만났다. 그는 이전에 우울증을 앓았지만 지금은 영구적으로 회복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처음 만난 날 우리는 각자에게 트라우마적인 기억을 준 서로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자신의 엄마를 용서했다고 했다. 내가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묻자 그는 대답 대신 ‘이따가 꼭 같이 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그의 집에 가 나란히 앉았다. “지금부터 같이 명상을 할 거야. 이건 누군가의 행복을 비는 명상이야. 마지막에는 너의 엄마를 생각해 보길 바라.” 나는 어색하게 정좌를 틀었다. 영상이 재생되고 정신과 의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마음속으로 세 명을 떠올리라고 했다. 처음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그다음엔 중립적인 사람, 그다음에는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한 사람씩 떠올릴 때마다 그의 행복, 안녕, 자유를 기원한다고 마음속으로 세 번 외치라고 했다. 나는 영상의 가이드를 따라 나의 가장 친한 친구, 그날 만난 스쳐 지나간 사람, 그리고 엄마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집중이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진심을 다하게 되었다. 마지막에 엄마의 행복, 안녕, 자유를 바랐다. 그리고 눈을 떴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명상 한 번에 내가 가진 원망을 모두 접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평안을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은 용서와도 가까운 무언가가 아닐까 싶었다. 어쩌면 용서란 마음먹기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날 이후 혼자서도 명상을 해보고 싶어졌다. 친구에게 명상 영상을 몇 개 추천받았다. 몇 가지 잘 맞는 영상들을 발견했다. 몇 가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생기고 나서는 명상을 하기가 더욱 수월해졌다. 그렇게 몇 개월 째 명상을 하고 있다.


명상이 가져온 변화

불안이 올라오고 하루종일 머리가 꽉 찬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명상을 찾는다. 나의 머리와 마음에 쉼이 필요할 때 꺼내서 쓸 수 있는 아주 유용한 도구를 하나 얻은 셈이다. 명상을 시작한 후의 변화는 엄청났다. 명상 이전과 이후의 삶은 다르다고까지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즐겨하는 명상은 호흡에 집중하며 감정을 비워내는 만트라(mantra) 명상이다. 배를 부풀리며 복식 호흡을 하는데 처음에는 호흡을 깊게 하는 것에만 집중했다가, 그다음에는 차가운 공기가 들어가고 따뜻한 공기가 나가는 것을 느낀다. 그다음에는 호흡의 소리를 듣는다. 마지막으로는 일종의 기운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날숨 대신 ‘람(ram)’이라는 소리를 길게 내뱉는다. 명상을 처음 할 때는 생각들이 망아지처럼 날뛰는 게 느껴진다. 생각들은 뾰족뾰족 가시같이 나타나다가 물결처럼 쓱 왔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가이드에 맞춰 호흡을 계속할수록 그 생각들은 물러난다. 시간이 갈수록 차분해지고 평정을 되찾게 된다. 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느낌이 든다. 어떻게 인위적으로 변하지 않아도, 나인채로도 괜찮다고 느껴진다.

그 명상을 하고 나면 명치 쪽이 묘하게 가벼워진다. 가슴 부근의 물리적인 긴장이 풀린다. 마음속에 텅 빈 공간이 생기는 것만 같다. 불안, 초조함, 후회 등 감정의 무게가 덜어진다.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은 편안한 나를 만나게 된다. 그 감각은 생경하지만 아주 편안하다. 나는 그것이 명상을 할 때 도달하게 되는 하나의 상태라는 것을 발견했다. 감정이나 잡념이 걷어지고 만나는 일종의 진정한 자아와도 같은 느낌이다. 동시에 정신에 대한 자각은 있지만 무언가에 대한 집착은 없는 상태이기도 하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명상에도 단계가 있다고 한다. 명상을 준비하는 단계(Dharana), 본격적인 명상 상태에 이른 단계(Dhyana), 일종의 꿈을 꾸는 것과 같은 환각을 경험하는 단계(Samadhi)가 있으며, 그중 내가 경험하는 것은 두 번째인 드야나(혹은 디야나)에 해당한다고 한다. 명상을 함에 따라 그 상태에 도달하는 시간도 짧아졌다. 지속 시간도 길어졌다. 그 상태에 도달하면 내 몸에 대한 자각이 사라졌다. 그때의 나는 평온한 관조자와 같았다. 마음이 얼마나 편안하고 안심이 되는지, 외부의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를 만나기 위해서 더욱 자주 명상을 하게 됐다.


명상을 하고 나면 꼭 일지로 기록을 남긴다. 그날 어떤 마음으로 명상에 임했으며 어떤 것이 어려웠고 어떤 것이 좋았는지 느낀 점들을 써나간다. 자주 하는 루틴이 있음에도 신기하게도 할 때마다 다른 것이 느껴진다. 어떤 날은 들숨의 찬 공기가 더욱 잘 느껴진다. 어떤 날은 청각이 더욱 예민하게 반응한다. 어떤 날은 ‘이런 시간을 준 스스로에게 감사하세요’라는 명상 가이드의 말이 더욱 와닿는다. 명상 외에도 하루에 운동, 산책, 춤 등 의도적으로 몸을 움직이면서 무언가에 몰입한 순간이 있으면 같이 기록했다. 몇 달이 되니 그 기록들도 제법 두꺼워졌다. 시간이 지나 그 기록을 다시 읽어보는 재미도 생겼다. 그 일기장에는 스스로를 아끼고자 하는 노력이 차곡차곡 담겨있었다. 시간을 내어 명상, 요가, 운동을 하며 현재, 여기에 살고자 애쓰고 그런 시간을 내어준 스스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명상을 시작하고 나 자신과 더 친해진 것 같았다.


명상을 하다 보면 자기 통제감을 되찾는 느낌이 든다.  어느 날은 일을 하다가 잠시 낮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었다. 그다음 날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자 더욱 불안해졌다. ‘괜찮아. 내가 컨트롤할 수 있어.’ 왠지 모를 자신감이 들었다. 심장박동 세 번마다 들숨과 날숨을 쉬어보았다. 천천히 심박수가 느려지더니 호흡이 길어지고 얕은 잠에 들었다. 나에게는 불안과 걱정에 끌려가지 않는 강인한 힘이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명상을 하고 나서 일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무례한 행동을 해서 마음이 크게 상했다. 하지만 그때 스스로에게 물었다. ‘명상을 할 때 만나는 내가 지금 이 일로 인해 타격을 받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저 사람은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나의 본질은 변한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자 마음이 평안해졌다. 몇 시간 뒤에는 그 일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렸다. 본래 나는 외부의 자극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다.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계속해서 이를 곱씹는 습관이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스스로의 모습이 너무도 낯설었다. 나에게 명상을 소개해준 친구는 “명상을 계속하다 보면 명상을 하고 있지 않아도 그 감각들을 일상으로 가져오게 된대. 그러면 일상에서도 그 안전하고 평온한 기분을 느낄 수 있대.”라고 말했었다. 이것이 그 말의 의미인가 생각했다.


명상을 시작한 이후 나는 처음으로 심지 굳은 인간이 된 기분이 든다.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갖는 것은 내가 오랜 시간 원해온 일이었다. 우울이나 불안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명상을 꼭 추천하고 싶다. 꼭 대단히 진중하게 임할 필요도 없다. 핸드폰을 보며 궁금하지도 않은 SNS를 무한 스크롤하는 10분을 속는 셈 치고 한 번 다른 일에 써보자. ‘효과가 있으면 좋고, 안 되면 말고’ 하는 마음으로 한 번 해보길 권한다. 일단 유튜브에 ‘명상’을 검색하자. 그리고 목소리가 마음에 드는 영상을 하나 고르자. 그다음엔 앉아서 눈을 감고 영상을 재생하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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