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했던 여행을 떠났어.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괴롭기도 했어. 교토로 떠나겠다는 거창했던 다짐과 다르게 날이 다가올수록 무서움이 커져만 갔거든. 생각보다 순탄하게 비행기에 올랐지. 이른 아침에 떠진 눈을 다시 감지 못하고 짐을 챙겼어. 몇 가지의 편한 옷가지와 세면도구, 맥북과 휴대폰 충전기, 여행 중에 읽고 싶은 책도 넣었어. 나쓰메 소세키 선생님 작품 두 권만 챙기려 했는데, 챙기다 보니 욕심이 생겨 네 권이나 넣어버렸네. 편하게 메모할 수 있는 노트와 못생긴 볼펜 두 개, 여권과 지갑을 백팩에 넣고 집을 나섰지.
일본에 도착했어. 간사히 공항이 2개로 나눠있는지는 몰랐던 사실이었어. 저번에 왔을 때는 역사와 가까운 공항에 내려서 셔틀을 탈 필요가 없었는데. 입국 수속 후에 나온 공항의 모습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 잠시 당황하긴 했었어. 지금부터 시작이다, 5일 동안 잘 살아보자, 다짐을 하곤 한 발 앞서 신나는 노래를 틀었어. 비가 올 거라기에는 하늘이 너무 예뻤어. 이런 구름을 뭐라고 하지, 알려줬었는데. 나는 결국 기억해내지 못했어. 알아뒀어야 했는데.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던 그 밤이 떠올라서 잠깐 아팠어. 나는 또 기억하지 못했구나.
역사에는 재미있는 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교토로 이동하기 위해 타야 하는 하루카 열차를 기다리는 와중에 작년과 같은 역무원을 만났거든. 하루키를 닮은 그가 어수룩한 모양새로 걷던, 그를 기억하는 나를, 그는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기억 속의 그 날처럼 무뚝뚝한 표정과 말투로 역사 안을 정리하는 그가 나는 괜스레 친근해서 자꾸 혼자 웃음 지었지. 낯선 말들이 오갔어.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언젠가 이해하고 싶은 그런 말들 사이에서 나는 생각했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말이야. 그때와 유사한 지금의 경험이 그때와 얼마나 달라져있을지 말이야. 나는 무엇을 원했을까. 좋았던 기억에 다시 찾은 이 나라에서 나는 과거와 같은 경험을 하고 싶었을까? 여전히 교토의 버스는 어려웠고, 교토역에서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 택시를 탔어. 생각보다 열악한 숙소였지만 큰 어려움은 없었어. 그것과 관계없이 내게는 잠들기 어려운 밤이었을 테니까. 누군가의 작은 움직임에도 흠칫 놀랐던 첫날밤이 나에게 있었어.
나는 요새 과거가 아파. 손 쓸 수 없는 것에 자꾸만 아파해서 참 큰일이다 싶어. 내가 지내는 지금을 나는 과거로 적어낼 수밖에 없다는 게 억울해. 내가 나로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에 네가 묻어 있어. 싫다고 말할 걸 그랬어. 함께가 아니라 혼자 하고 싶다고 우겨볼걸 그랬지. 장소를 떠나오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당황스럽기도 해. 전혀 새로운 장소에서 생소한 사람들과 어색한 생활을 해온 지난 시간에서도 나는 결국 너와 함께 흘렀어. 비가 떨어지듯 불규칙적인 속도로 똑, 똑, 네 생각을 하다 보니 하루가 저물 즈음에는 흠뻑 젖은 내가 있어. 그래도 괜찮아. 괜찮다, 괜찮다, 하면 괜찮겠지. 하니 괜찮아. 믿을 수 없는 신기루를 진짜라고 믿었던 잠깐보다야 지금이 훨씬 긍정적인 상황이겠지. 냉탕과 온탕을 수천번 오가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서 좋아했던 밤이 많이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믿기로 했어. 믿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을 테니까. 훗날 내가 달라진다면, 아마 이 시간을 많이 그리워할 것 같아. 그런 이유로 되도록 많은 것들을 기록하려 해. 적어내는 모든 것이 같은 것을 그리고 있어서 멋이 없지만, 선명한 나이테를 그릴 거야.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기억할 거야. 또렷하게.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