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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Nov 10. 2023

MBTI가 사람을 단순화 한다는 착각

MBTI는 대표적인 스넥컬쳐 중 하나입니다. 코로나 비대면 상황에서 관계를 다질 수 있는 유용한 도구, 입시, 취업 등 획일화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의 취향과 유형을 알아갈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도구로 쓰이고 있어요.


실제로 주변에 물어봐도 이것저것 짧게 해서 친구와 공유한다거나 처음 만난 사람들과 아이스브레이킹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성인 동아리 활동에서는 빠지지 않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이것 자체가 깊이니, 철학이니 운운할 수 있는 검사인지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철학이란 뭘까요? 영국의 한 철학자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소재로 '오징어 게임의 철학'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철학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어요. 한자로는 밝을 철에 배울 학자를 씁니다. 즉 어떤 대상이 우리에게 지혜와 깨달음을 준다면 그것은 철학 하는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칸트, 데카르트, 소크라테스를 대상으로 해야만 '철학을 한다'라고 볼 수 없어요. 


다만 그 대상에 따라 얼마나 탐구할 만한 가치가 있나 하는 '함량'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 영국 철학가의 생각으로 '오징어 게임'이 철학적 탐구를 진행할 만한 '함량'이 충분하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MBTI'가 철학적 부분에서 탐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MBTI 검사와 해석은 상담 윤리를 준용하고 있습니다. 전문성을 갖추고, 장소를 확보하고, 비밀을 보장하며,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지 않는다는 윤리적 차원의 레이어가 있습니다. 거기서 한층 더 내려가보면 융의 정신분석학과 철학을 기반으로 한 철학적 차원의 레이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세 가지를 꼽자면


1. 인간 다양성이 대한 인정(피투성)

2. 삶과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인정(아모르파티)

3. 개선 가능성에 대한 믿음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피투성은 인간이 내던져진 존재임을 말하는 철학적 개념입니다. 하이데거는 인간 불안의 기원이 피투성에서 온다고 말합니다. 던져진 것은 어떤 목적도 디자인된 의도도 없습니다. 다만 던져졌을 뿐이고, 내가 인지하기도 전에 제멋대로 '이미 그렇게 생겼을 뿐'입니다. 최연소 아쿠카타와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는 '부모를 죽여라'에서 '자신의 삶, 외모, 성격, 키 어느것 하나 내가 선택한 것이 없다.'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MBTI, 나아가 융의 이론은 그런 인간의 다양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으며 피투성에서 오는 불안을 제어합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닌'것에 대한 인식을 심어준달까요? 


MBTI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유형 중 하나인 INTP는 소수 유형입니다. 이들은 사회 활동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기 쉬운 유형이고 거기에 따른 불안과 갈등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MBTI를 통해 그게 나의 유형적 특징이고, 나와 같은 사람이 많다는 인식을 하게 된 순간 피투성이 주는 불안으로부터 한발 멀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마치 컴퓨터에 어떤 오류가 떴을 때, 지식인이나 구글에 아무런 정답이 없다면 나는 내던져진듯한 불안감을 느끼게 되지만, 아직 잘 모르더라도 답변이나 게시물이 눈에 들어온다면 우선 안심을 하게 되는 것과 같달까요? 


정신분석학자 융이 성격유형 이론을 만든 배경에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서로 다를까?'하는 의구심이 있었다고 해요. 이리저리 제멋대로 내던져진 세계에서 피투성을 인지하고 관찰하며 그것들을 다시 하나의 패턴으로 엮는 과정은, 추상화가 잭슨폴록의 회화 작품에서 붓으로부터 내던져진 물감이 하나의 작품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종합하면 MBTI, 나아가 융의 성격유형론은 성격유형, 자아에 관안한 일종의 아카이빙 센터이고 내던져진 사람이 피투성으로 인한 불안감을 느낄 때 '너만 그런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뜨거운 감자 중 하나인 '사람을 너무 단순화한다'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MBTI는 16개의 성격유형으로 사람을 표현합니다. 많다면 많지만 70억 인구의 모든 성격유형을 핏하게 표현한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이를 중심으로 '과잉 일반화'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16개 이상으로 결과 유형이 나오는 심리검사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겠지만 효용성 차원에서 절제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필요악 차원의 절제입니다.


더 세분화하면 주변 사람들과의 유대나 역동을 관찰하기도 어렵고, MBTI 전문가의 양성이나 이론적 발전도 상당히 버거울 것 같아요. 정신의학의 시조새 격인 정신분석학에서 갈라진 두 가지 심리학 부류가 1. 상담 중심의 심리치료 2. 약물 중심의 심리치료이고 두 번째 카테고리에서 무수한 의학적 지식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배출됩니다.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심리에 관해 정신의학자 만큼 지식이나 역량을 갖추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다소 단순한 도구라도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관계를 풍요롭게 가져갈 수 있는 순기능을 다 한다면 훌륭한 도구라고 생각해요.


MBTI를 주제로 다룬 팟캐스트에 참여했을 때 비판하는 쪽에서 'MBTI가 개략적으로 나의 성격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개개인별 정도와 특수성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질문을 듣기도 했습니다. 어떤 틀을 짜서 사람을 거기 우겨넣는 느낌이겠지요? 하지만 전문가가 검사한 검사지에는 각 지표에 따른 개인별 수치가 나오게 됩니다. 고급형 검사인 form Q는 각 지표에 또 3가지 특징을 세분화하여 24가지 지표의 수치가 보이기도 하고요. 즉 그보다 더 다양한 특징이 있음을 상정한 검사이며, 제대로 된 전문 해석자를 만난다면 해석을 통해 의견을 맞추어 나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좀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16가지 유형으로 단순화했다'라고 말할 만큼 우리 사회 분위기가 엄청난 다양성에 대해서 인지하고 인정하며, 다루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사람은 개개인마다 독특성과 역사, 성격과 취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두 가지 지표로 가치를 강요하고 갈등을 조장했을 뿐 인격을 존중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사회 분위기상 성별, 계층, 연령, 지역, 학력, 직업, 정치 성향 등 극히 이분화된 지표를 통해 얻은 부실한 데이터로 사람을 판단하였고, 여기에 불편함을 느낀 사람들이 무려 '16가지'나 되는 MBTI에 과몰입하게 되었던 게 아닐까 저는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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