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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리버샷 –영혼의 스위치가 꺼지는 순간

보고도 못 막는

by 허블

격투기에서 리버샷(Liver Shot)은 보고도 막기 힘든 ‘악마의 기술’이다. 느린 화면으로 보면 분명 복부 쪽으로 훅이 날아오는데, 실제 속도에서는 그냥 옆구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다음 순간,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그 한 방을 맞은 선수가 갑자기 허리를 접으며 고꾸라진다. 숨을 깊게 들이쉬지도 못한 채 바닥을 구르다가, 겨우겨우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옆으로 눕는다.


관중들은 웅성거린다. “얼굴을 맞은 것도 아니고 턱이 돌아간 것도 아닌데, 저렇게까지 아파한다고?”


리버샷은 간(Liver)이 위치한 오른쪽 옆구리 갈비뼈 아래를 정확히 노리는 공격이다. 간은 우리 몸에서 피가 가장 많이 몰려 있는 장기이자, 수많은 신경 다발이 연결된 급소다. 그곳에 강한 충격이 꽂히면 뇌는 “생명에 치명적인 위협이 발생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 즉시, 몸의 모든 전원을 강제로 내려버린다(Shutdown). 다리에 힘이 풀리고, 호흡이 멈추고, 사고 회로가 정지한다. 의지로 버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냥 스위치가 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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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도 리버샷 같은 순간이 있다. 평소에는 강단 있게 잘 버티던 사람이, 어느 순간 아주 사소해 보이는 장면 하나에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평범하게 대화하던 중 상대가 툭 던진 한 단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 흘러나온 어떤 냄새, 늦은 밤 골목길에서 들려온 구둣발 소리, 현관문이 닫히는 ‘쾅’ 하는 소리 하나.


그 찰나의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고, 기도가 막히고, 손끝에 힘이 빠져나간다. 갑자기 눈물이 터지기도 하고, 반대로 몸이 얼음처럼 굳어서 아무 말도 못 하기도 한다.


옆에서 보던 사람은 당황해서 묻는다. “아니, 방금 무슨 큰일이라도 있었어?” “그냥 평범한 말 아니었어? 왜 그렇게 정색해?”


맞다. 제3자의 눈으로 보면 그저 평범한 상황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달랐다. 그 ‘평범한’ 장면이, 과거의 가장 아팠던 기억과 정확히 겹쳐버리는 스위치였던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과거의 상처를 다시 켜버리는 방아쇠를 ‘트리거(Trigger)’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Trauma)를 ‘엄청나게 충격적인 사건 그 자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트라우마의 진짜 핵심은 사건이 아니라, 그때 내 안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고인 감정들”이다.


너무 갑작스럽게, 너무 강렬하게, 너무 외롭게 겪어야 했던 감정들. 공포, 수치심, 무력감, 분노 같은 것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는데, 그 순간의 어린(혹은 약했던) 나에게는 그것을 소화할 시간도, 공간도, 도와줄 어른도 없었다.


그래서 뇌는 비상 조치로 이 감정들을 처리하지 않은 채 쑤셔 박는다. “이건 지금 감당할 수 없다. 일단 압축해서 무의식 구석에 던져두자.”


겉으로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때의 감각, 냄새, 소리, 분위기는 고압축 파일로 저장된다. 문제는 그 파일의 이름이 ‘쓰레기통’이 아니라, ‘경보 시스템(DANGER)’이라는 데 있다.


그래서 비슷한 자극이 1%라도 감지되는 순간, 뇌는 즉시 그 파일을 열어버린다. “위험해! 또 그때 그 상황이야! 당장 엎드려!” 이번에는 너무 늦기 전에,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트리거 반응이 종종 “지나치게 과민해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회사에서 선임이 지나가듯 한마디 던진다. “이런 것도 모르면서 왜 가만히 있었어?” 동료들은 “아, 또 꼰대질 시작이네” 하고 한 귀로 흘린다. 늘 있는 잔소리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 말이 심장에 꽂히는 비수가 된다. 입안이 바짝 마르고, 주변 소리가 웅웅거리며 멀어지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한다. 손이 떨리거나 숨이 가빠진다.


머리로는 안다. “지금 이건 그냥 업무 피드백이야. 이 사람은 그때 나를 때렸던 아빠가 아니야.” 하지만 몸은 듣지 않는다. 마치 10년 전 그 공포스러운 거실 한복판에 다시 서 있는 것처럼 반응한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엔 “별말 아닌데 왜 저래?”가 되어버린다. 심지어 본인조차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는다. “나 왜 이러지? 미쳤나 봐. 정말 찌질하다.”


하지만 이때 필요한 말은 “너 왜 그래?”라는 비난이 아니다. “아, 너한테는 이게 리버샷이었구나.” 라는 이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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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샷의 또 다른 특징은, 맞는 순간 선수 본인도 상황 파악이 안 된다는 점이다. 머리로는 “어? 방금 뭐가 스쳤는데?”라고 생각하는 찰나, 몸은 이미 바닥에 꺼져 있다.


트라우마 반응도 비슷하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이성을 붙잡으려 애쓴다. “별거 아닐 거야”, “지나가면 괜찮아질 거야”, “다들 겪는 일이잖아”.


하지만 몸이 먼저 비명을 지른다. 심박수가 치솟거나 반대로 뚝 떨어지고, 시야가 터널처럼 좁아지며,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진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혐오한다.


“내가 이 정도도 못 견디는 나약한 인간이라니…”

“과거에 얽매여서 사회생활도 못 하는 바보 같으니라고.”


하지만 단언컨대, 이건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당신의 몸이 너무나 똑똑하고 성실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당신의 몸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맞았는지를 생각보다 훨씬 디테일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저장된 패턴과 비슷한 상황이 오면, “주인님, 위험해요! 도망쳐요!”라고 필사적으로 사이렌을 울리는 것이다. 그 사이렌 소리가 바로 갑작스러운 감정 폭발, 멍해짐, 얼어붙음 같은 반응들이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럼 그냥 트리거가 될 만한 걸 평생 피하고 살면 되지 않을까?”


물론 나를 망가뜨리는 유해한 환경에서 도망치는 건, 비겁함이 아니라 최고의 자기 방어다. 하지만 문제는, 트리거 중 상당수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우연’이라는 데 있다.


우연히 마주친 낯선 사람의 눈빛, 지하철 안내 방송 톤, 여름밤의 습한 공기, 누군가의 낮은 웃음소리, 손등에 닿은 차가운 감촉. 세상은 거대한 지뢰밭이자, 끝없이 쌓인 기억의 데이터베이스다. 어디에 내 아픔이 연결되어 있는지, 우리는 미리 다 알 수도 피할 수도 없다.


그래서 리버샷과 트리거를 다루기 위해서는 두 가지 축이 필요하다.


첫째, “내게 어떤 것들이 리버샷이 되는지” 관찰하기.

둘째, “맞았을 때 어떻게 덜 다치게 넘어지고, 어떻게 다시 일어날지” 연습하기.


전자는 자기 이해(Self-awareness)의 영역이고, 후자는 대처(Coping)의 영역이다. 이 책은 병원 처방전이 아니기에 전문적인 치료법을 다룰 순 없지만, 링 밖에서 물을 건네는 ‘세컨’(코너에서 선수 챙기는 사람)의 마음으로 몇 가지 팁을 줄 수는 있다.


먼저, 내 리버샷의 목록을 작성해 보는 일부터 시작하자. 어떤 말투에 유난히 심장이 철렁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숨이 가빠지는지, 어떤 표정을 보면 머리가 하얘지는지.


이때 가장 중요한 원칙이 있다. 자기 자신을 심판대에 세우지 말 것. “이건 과민 반응이야”, “이건 유난 떠는 거야”라고 판결 내리지 말고, 그저 연구원처럼 기록해 보자.


“아, 나는 큰 소리가 나면 몸이 굳는구나.”

“나는 누군가 한숨을 쉬면 죄책감이 드는구나.”


이게 바로 ‘리버샷 로그(Log)’를 남기는 작업이다. “나는 어떤 각도의 펀치에 약하더라”를 아는 것만으로도, 막연한 공포는 많이 줄어든다. 예측 가능한 고통은 예측 불가능한 고통보다 덜 무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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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과거의 상처를 들쑤셔 자신을 고문하는 자학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이 반응은 내가 미쳐서가 아니라, 그때 그 시절 내가 살고 싶어서 선택했던 처절한 생존 전략이었구나”라고, 뒤늦게나마 나의 몸과 마음을 이해해 주는 화해의 과정이다.


리버샷을 이야기하며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마지막 포인트가 있다. 트라우마는 종종 지독한 ‘후회’를 동반한다.


“그때 멍청하게 있지 말고 따졌어야 했는데.”

“그때 도망쳤어야 했는데.”

“왜 싫다고 말을 못 했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과거의 무력했던 자신을 탓하며 괴로워한다.


“내가 조금만 더 똑똑했더라면…”


하지만 리버샷을 실제로 맞아본 선수들은 안다. 정말 제대로 급소를 맞은 그 순간에는, ‘생각’ 따위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몸이 먼저 꺼져버린다는 것을.


그 순간의 당신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던 이성적인 성인이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만 본능적으로 계산하던 어린아이 혹은 겁에 질린 생명체였다. 그때 당신은 비겁했던 게 아니다. 그 절박한 순간에, 당신이 가진 것 중 가장 빨리 꺼낼 수 있는 최선의 방패를 든 것이다. 그것이 설령 침묵이었든, 비굴한 웃음이었든, 얼어붙음이었든 간에. 그 덕분에 당신은 부서지지 않고 오늘까지 살아남았다.


그러니 이제는 그때의 나를 향한 비난을 멈추고, 이렇게 말해줘야 한다. “어쩔 수 없었다”를 넘어, “그 무서운 상황에서 그 정도라도 버텨내느라 정말 고생했다”고.


그 인정이 없으면, 현재의 당신이 겪는 트리거 반응들은 영원히 ‘고쳐야 할 부끄러운 고장’으로 남는다. 하지만 “아, 내 몸은 나를 지키려고 이 기술을 써왔구나”라는 이해가 생기면, 당신의 상처는 비로소 치유의 궤도에 오른다.


이 장은 결국 이 한마디를 전하기 위해 길게 돌아온 셈이다. 지금 당신이 어떤 장면에서 이유 없이 무너져 내린다면, 그건 당신의 멘탈이 약해 빠져서가 아니다. 어딘가에 저장된 아픈 리버샷의 기억이, “이번엔 제발 다치지 마”라고 외치며 재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고장이 아니다. 몸과 뇌가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조금 서투른 방식으로 울리는 경보일 뿐이다.


우리가 앞으로 할 일은 그 경보를 무작정 꺼버리는 게 아니라, “이 벨이 언제부터, 왜 울리기 시작했지?”를 차분히 들어주는 일이다.


다음 장에서는 이제 조금 더 직관적인 타격으로 넘어가 보려 한다. 은밀하게 찌르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얼굴로 날아드는 직격탄(Straight). 우리의 영혼을 난타하는 팩트폭행, 막말, 그리고 언어폭력인 ‘트래시 토크’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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