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면서 퇴사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퇴사. 일년을 목표로 잡은 직장인데 일년을 채우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두달전 부터 있었다.
그래도 일년은 채워야..
일년이 무슨 의미일까.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직장이 아닌데 일년을 다니나 7개월을 다니나 별로 의미가 없을것 같았다. 그래도.. 그래도.. 일년은 버티고 싶은데.
처음에 들어갔는데 아니다 싶으면 바로 나오는거야.
다른 친구들이 고민할때 쉽게 얘기하던 나였다. 그런데 그 주인공이 내가 된다고 하니 일년도 못채우는, 뚝심없는, 참을성 없는, 뭔가 문제 있어보이는 루저가 된 기분이었다.
일년이 금방 갈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느렸다. 입사하고 한두달은 좋았다. 무언가 내가 배우고 있다는 기분. 실수를 해도 신입이니까 언젠가 실수가 줄어들거란 기대와 그 기대를 만족해가며 느끼는 뿌듯함. 매일 정해진 날짜에 들어오는 월급을 받으며 사회에서 일인분이 되어가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쉽게도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항상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지루했고, 실수가 줄었지만 여전히 하게 되는 실수를 보며 완벽하지 못한 나 스스로를 자책했다.
입사 후 줄 곧 상사와 트러블이 있었다. 이 곳에 오래 있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에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진짜 마음에 안드는 상사가 있다. 능력도 없고 사람다룰 줄 도 모르고 잔소리 밖에 할 줄 모르는 무식자. 나는 매일 그를 속으로 무시했다. 내게 말도 안되는 걸 요구할때마다 지지 않고 말대꾸를 하며 버텼다. 제 아무리 상사라도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 나도 널 존중할 수 없다는 자존심을 부렸다. 시간이 갈수록 나와 상사는 더 멀어졌다. 한번 어긋나 버린 관계는 절대 틀 수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고 피곤해진 건 나였다. 아무리 상사가 마음에 안들어도 나는 그냥 그보다 을의 위치였다.
이미 난 그에게 찍혔고, 모든 문제가 생기면 나를 의심했고, 나는 내가 문제의 중심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서야 했다. 이런 나날이 길어질수록 나도 지쳐갔다. 나빼고 다른 동기들은 잘 버티는 것 같았다. 상사의 잔소리에 참을 수 없어서 말대꾸를 하고 썪은 표정을 짓는 나와는 다르게 노련하게 상사의 기분을 다루는 동료를 볼때마다 나도 저랬어야 했는데..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학창시절부터 내가 가장 싫어했던 사람의 유형은 앞뒤 다른 사람이었다. 상대가 앞에 있을때 온갖 알랑방구를 끼며 기분 맞춰주지만 상대 뒤에서 가장 심하게 욕하고 험담하는 간사한 유형들. 제일 싫었다. 그런데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런 노련함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차마 그걸 지혜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생존을 위한 노련함.
집에 오는길에 영에게 카톡을 남겼다.
나: 나 퇴사해야겠어.
영이: ㅠㅠㅠㅠㅠㅠㅠ
이번달에 퇴사하는 영이는 나의 퇴사(결심)소식에 카톡울음을 표했다.
퇴사를 결심하는 마음보다 퇴사를 실행하는게 더 어렵다는 걸 알기에 그냥 말없이 ㅠㅠ로 표현했겠지.
언제 퇴사하면 좋을지 달력을 보는데 지난달에 결제한 피부과 패키지 금액을 생각하면 아직 몇달은 더 다녀야 하지는 않을까. 이미 긁어버린 카드값을 보니 한숨만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