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 시 「봄 저녁에」에 대한 소회
지인의 아내가 전화를 걸어왔다. 남편이 문을 걸고 도무지 말을 하지 않는단다. 시인은 자신도 거쳐봤던, '절벽과도 같았던 하루'를 떠올린다.
파릇한 봄은 왔건만 마른풀처럼 생기 잃은 몸이 어색하던 그날을. 위로를 갈까 물어봐 달랬더니 오지 말라 머리를 마구 흔든다고 한다. 시인은 생각한다. '나도 한 사나흘 입 떼지 않고 산 적 있었다.'라고.
말도 싫고 누구도 만나기도 싫은 그런 날이 있다. 자신에게 화가 났을 뿐이다. 나만 그런 현상을 겪는 건 아닌 줄은 알지만 그래서 더 싫다. 가족들은 별일이라며 눈치를 준다. 몸도 마음 같지 않고, 마음은 더더욱 엉뚱하다.
어김없는 사추기(思秋期) 현상이다. 그럴 땐 그냥 내버려 둬야만 한다. 누구나 겪고야 말 늙음의 진행 과정이다. 여행이라도 떠나 마음을 다잡고 싶지만 별종으로 취급받을까 두려워, 남자는 늘 꿈만 꾼다.
시인 또한 한 사나흘 침묵으로 산 적 있다고 고백한다. 나 또한 충동은 발화되었지만 그러진 못했다. 시인처럼 대학교수를 했거나, 나처럼 명예퇴직이라도 한 사람에게는 어리광과도 같이 보일 수도 있다.
초고령, 노인 빈곤의 시대이자 노인 자살률 세계 1위의 대한민국 서울에서는 빈번한 일이다. 알지 못할 뿐이지 다반사일 것이다.
린위탕(임어당)은 "이 세상을 한 편의 시(詩)로 생각한다면 황혼기가 가장 행복한 때"라고 『생활의 발견』에서 말했다. 우아하게 즐기라니 배부른 덕담인가. 왜 그러고 싶지 않겠는가. 말처럼 쉽지가 않다.
황동규 시인은 소설가 황순원의 아들이다. 1938년 생이니 여든을 훌쩍 넘겼다. 몇 년 전부터 늘 이번이 마지막 시집이라 여기며 시를 쓴다고 한다. 누구나 경험했을 일상을 소재로 한 담담한 대화체의 시가 어느 날 마음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