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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하이 Sep 28. 2022

천자문: 사람이 긔(그 사람)요 글씨는 곧 마음이라.

김성동 『김성동의 천자문』과 영화 「만다라」




지하철 안, 칠순은 된 어르신이 한지 위에 딥 펜으로 반듯하게 한자를 쓰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붓 펜을 샀고 『김성동의 천자문』을 꺼내 쓰기 시작했다. 십여 년 전 홍콩 주재 근무를 떠나며 샀던 책이다. 한문을 제대로 공부해 보겠다는 심모원려였다.


총 125련(8자 × 125련=1000자)의 천자문의 속뜻은 종횡사해였다. 천자문과 논어를 필사해 봤지만 그때뿐이었다. 배웠지만 때때로 익히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요즘  '천자문 노래'를 음성파일로 다운로드해 잠들기 전 그리고 산행하며 듣고 있다.


홍콩에 살며 우리 한자 발음이 홍콩(광동성, 복건성)과 유사하고, 당나라 시대의 발음이 아직 남아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복건성의 발음을 길라잡이 삼았다는 기록도 있다. 하늘(天) 발음이 중국에서 '티엔'이지만, 황해를 건너오면 '천'이고, 홍콩 사람들은 단음절 '틴'으로 읽는다. 




김성동의 '천자문'(왼쪽)과 조선시대 '천인천자문'(오른쪽)




우리나라 말은 본디 바른 소리, 정음(正音)이다. 바른 소리란 천지자연의 법칙에 따라 한 글자에 한 소리로 발음하는 '일자일음(一字一音)'이 원칙이다. 중국에서는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읽지만, 한국과 일본은 훈독을 사용하여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누를 황,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로 읽는다.


천자문의 유래가 백수문(白首文) 임은 다 아는 사실이다. 김성동은 『천자문』 서문에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글이 글이 곧 긔(그 사람)이고 글씨는 곧 마음이며,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글을 짓고 글씨를 쓸 수 있다"라는 말을 옮겨 적었다.


예로부터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당나라 시대의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든다. 신수, 말씨, 글씨 그리고 판단력이다. 지금 말과 글이 풍성하지만, 바른말(言)과 곧은 글씨(書)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점차 적어지고 있다.





소설가 김성동이 며칠 전 명을 달리했다. 불교에 귀의했다 환속하여 『만다라』로 일세를 풍미했고, 승적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몇 달 전 무심하게 OTT 채널을 돌리다 영화 「만다라」를 다시 본 적 있다. 최초의 불교영화이자 로드 무비이다. 생각 없이 봤던 젊은 시절보다는 몰입도가 강했다.


그의 다른 소설, 젊은 시절 화두였기도 했던  『병 속의 새』는 어떤가? 입구가 좁은 병 속에 어린 새를 넣어 키웠는데 자라고 나니 꺼낼 수가 없다. 어떻게 꺼낼 것인가의 문제다.


그럴듯한 정답은 "새도 없고 병도 없다.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라며 킬킬댔던 기억이 난다. 만다라에서 젊은 승려 법운으로 깊숙한 연기력을 보여줬던 배우 안성기 또한 혈액 암으로 투병 중이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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