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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하이 Oct 12. 2022

가을 낙엽처럼 내리고 싶은 十月의 시

황동규 「시월」



또 시월(十月)이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몇 번의 시월을 더 맞이하게 될지를 생각하면 가끔은 혼란스럽다. 중년의 가을은 난감하다던 소설가 김훈의 심경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시월이다.


일본의 국민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는 「10월의 노래」에서  "이 투명한 공기 속에서는 / 어떤 작은 거짓말도 할 수 없다."라고 읊었고, 독일 시인 릴케는 "주여, 이제 때가 왔습니다."라고 했다. 시월 안에는 동서를 막론하고 형용할 수 없고, 구체화하지도 못하는, 뭔가 비밀스러운 구석이 존재하는 것 같다.


시월에 감성에 저절로 공감이 시는 황동규 시인이 서른 남짓한 무렵 쓴 것으로 추측된다. 이때의 서른은 이립(而立), 즉 뜻을 세울 연배였고, 지금의 서른은 기껏 사회 초년에 불과하다. 시간은 물리적으로 따지면 모두에게 같지만, 그 길이와 깊이는 늘 상대적이다. 경험으로 아는 사실이다. 조선 시대의 하루와 2022년의 하루의 길이가 같을 수는 없고, 청춘의 한나절의 깊이와 노년의 한나절의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가을비에 젖은 도로위 낙엽 @splash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 한 탓이다."라는 표현이 참 좋다. 꼭 지켜야 할 약속은 지키지 못했는데 타닥타닥 내리는 빗소리가 일깨워 준 것이 아닐까. 해거름에 불빛이 그리운 가을 저녁, '한 잎 낙엽으로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은' 마음은 서시(序詩)를 접하는 느킴이다. 그래서 가을 그리고 시월이 오면 어김없이 이 시를 꺼내 읽는다. 


시기에 황동규 시인의 시는 유독 서정성이 강하다. '진실로 사랑하는 기다림의 자세'를 가르쳐 주는 「즐거운 편지」를 읽을 수 있고,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던 「조그만 사랑 노래」도 보인다. 하지만, 내게는  「기항지 1」의 처음과 마지막 시구가 가장 차분히 다가온다. 그래서 늘 겨울 항구를 혼자서 오래도록 걷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올겨울은 그래도 되지 않을까.


걸어서 항구에 도착했다.
(…)
어두운 하늘에는 數三個의 눈송이
하늘의 새들이 따르고 있었다.

황동규 시인의 시집 『三南에 내리는 눈』과 황동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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