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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mini Mar 10. 2024

너도 울고 나도 울고

엄마가 되는 울음의 시간들


  법륜 스님 말씀이 「기른 자가 엄마」라고 했다. 그랬다. 낳는 일도 보통은 아니지만(오로 나오는지 확인해 본다고 수술 직후 회복실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아랫배를 꾹 누를 때 곧 저승 가는 줄 알았다. 그걸 네 번 했다), 낳았다고 바로 엄마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여태껏 나 개인, 딸, 남매, 친구, 학생 등등 다양한 가면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엄마라는 정체성은 처음이었다. 임신 기간 중에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남에게서 듣기라도 하면 마음이 곧잘 혀끝을 달았다. 「제가요?」 애월이의 엄마라는, 맞지 않을 것 같은 옷에 적응하기까지 참 많이도 울었다. 오늘은 그랬던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24시간 모자동실을 했지만 우리는 2주 만에 아기의 울음소리를 변별하는 초고급 능력을 갖추진 못했다. 나와 남편은 밥 때도 아니고 기저귀 타임도 아닌데 애월이가 왜 우는지, 무엇 때문에 우는지 알 수 없었다. 무엇을 원하는 걸까? 물음표 투성이의 나날. 그리고 스와들업을 입혔는데도 놀람 때문에 애월이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신생아 때는 자주 안아서 재워야 했다. 그에 더해 거진 2시간마다 계속해야 하는 새벽 수유. 먹이고 트림시키고 소화 좀 더 되라고 안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1시간이다. 그런 와중에 「안으면 손탄다는데」 「이렇게 키우는 게 맞나」 몸도 피곤한데 온갖 생각이 더해져 혼란스러워, 수유를 하는데 눈물을 주르륵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애월이가 생후 75일이 된 지금은 혼자 아기를 하루 종일 봐야 하더라도 울지 않는다(말이 좀 없어질 뿐). 애월이가 맘마를 먹으면서 응가를 싸고, 그래서 힘을 주느라 먹은 것을 꽤 많이 게워내 난장이 되어 결국 혼자 목욕을 시켜야 할지라도 당황하는 법이 없다. 새벽의 먹잠 패턴이 깨져 갑자기 먹놀잠이 되더라도 놀라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지」 한때는 목욕 후 애월이 몸에 로션을 발라주는데 아기가 지러지게 울었던 때가 있었다. 그날 나는 잠을 못 잔 채로 종일 혼자 육아를 했었고 애월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왔다. 가족들 앞에서 부끄러움도 잊고 펑펑 울었다. 「하나 키우는데 뭐가 힘들다고 그래!」 엄마의 호통에 소리를 빽 지른 것은 비밀.



  또 한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애월이의 울음이 어떻게 해도 달래지지 않았던 때. 안는 것이 육아 최고의 스킬이라고 생각될 만큼 대부분은 안고 둥기둥기 살살 바운스를 주면 진정이 됐는데, 이날은 유독 특이한 날이었다. 결국 애월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아기가 스스로 울음을 멈추기를 기다려야 했다. 숨 넘어가게 울어서 이러다 어떻게 되는 게 아닐까 염려스러우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그 울음을 그저 다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이후로 애월이는 목청이 트였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애월이가 울음을 멈췄다. 나는 일찍 퇴근한 친정 아빠에게 애월이를 맡기고 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지연된 울음을 몇 시간이나 울었다.



  나쁜 엄마가 된 것 같아 울기도 했다. 전날 잠을 잘 못 자면 아기를 돌보는 일에 짜증이 일어나곤 했다. 대부분 혼자 있을 때. 또 혼자 있다 보면 애월이에게 아무리 말을 많이 건다 해도 아직은 일방적인 소통밖에 되지 않기에 자연히 말수가 줄어든다. 그러면 내가 마치 양면의 인간이라 아기에게 혼란을 초래하는 것은 아닌가 미안해졌다. 마음에서 짜증이 나더라는 느낌 자체가, 그런 마음을 밖으로 전혀 표출하지 않았더라도 죄스러웠다. 그래서 또 미안했다. 「나는 엄마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그것도 모르고 얘를 세상에 낳았어」 「내가 엄마여서 얼마나 힘들까. 엄마 때문에 태어나자마자부터 힘들어하는구나」 애월이를 안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내가 흘렸던 눈물들이 유난이라든지 별스럽다는 생각은 들지가 않는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때도 있었지」 하고 대단하지 않게 여기지만, 나는 그 과정이 꼭 필요했다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되는 울음의 시간. 아기는 첫째, 몸으로 낳고 둘째, 마음으로도 낳아야 비로소 내 자식이 되는 것 같다. 마음으로 낳는 과정이 몸만큼 아프지 않으리라고, 아무런 느낌도 감각도 없이 어느 날 마음속에 더럭 자식이 들어앉으리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마음으로 낳는 것도 아프니까 울었던 것이라고, 나는 그제서야 정말로 엄마가 되는 것이라고.






  쓸까 말까 고민을 많이 한 목차였다. 처음에는 혼자 했던 육아(남편은 나중에 집으로 돌아갔을 때 출산 휴가를 쓰기 위해 출근하고 있었고, 친정 부모님은 모두 일하러 나가셔서 신생아 때부터 혼자 육아해야 했던 적이 좀 된다)의 어려움에 대해 쓸까 했는데 이놈의 머리가 벌써 그 시절을 다 잊었다. 뭐가 힘들었더라(그래서 둘째를 낳는 모양이다!). 기억도 나지 않는 감정을 꾸며내듯 쓰는 것은 싫었다. 그래서 방향을 바꾸어 적었다. 짧은가. 너무 빨리 적은 것(?) 같은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지만 이 글은 이대로 충분한 것 같아 발행한다.



24. 03.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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