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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미니 May 19. 2024

이래도 되나

육아 난이도가 급하락 했다


  언제부터였더라. 기록을 살펴보면 생후 2개월부터 애월이는 깨어 있는 시간이 제법 됐던 것 같다. 먹잠먹잠하던 신생아 시절을 지나 자연스럽게 먹놀잠의 패턴이 생겨났다. 그때의 놀이 시간에 해줄 수 있는 건, 지금 돌이켜 보면 별로 없었다. 이제 막 몸을 움직이지만(자신의 의지는 아닌 것 같지만) 눈이 잘 보이지 않아 함께 가지고 놀 만한 종류가 한정적이다. 하지만 깨어 있는 시간은 짧은 편이고 엄마인 나의 놀아주고자 하는 열정은 가득했기 때문에(그리고 애월이의 첫 성장을 눈으로 확인할 때의 기쁨) 애월이와 나는 깨어 있을 때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시간이 얼마 안 되는 양인 것 같아서 아쉬웠던 사람은 나다.



  아침이 되면 기저귀를 갈고 맘마를 먹이고, 소화를 좀 한 후에 얼굴을 씻기고 로션을 발라준다. 구강 티슈나 가제 손수건으로 양치질도 해준다. 그러고 나면 다시 잘 시간. 자고 일어나면 다시 기저귀와 맘마 루틴을 수행하고 그때부터는 놀이를 시작한다. 역방쿠에서 모빌 보여주기, 아기 체육관 가지고 놀기, 터미타임 하면서 초점책 읽기. 그러고 나면 다시 잘 시간이다. 다음 타임은 목욕을 해야 한다. 먹이고 목욕을 하든지, 목욕을 하고 먹이든지. 한 번 더 자고 나면 보통 저녁이기 때문에 놀기보단 잘 수 있는 조용하고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 준다. 밤 9시에 재우는 건 당시로서는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기가 아직 밤이 무엇인지 몰랐을 뿐인 것 같다.



  기점은 애월이가 통잠을 자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2개월에 다섯 시간 자는 것도 통잠의 유형이지만 그런 것 말고, 밤에 일찍 취침해서 다음 날 아침에야 일어나는, 10시간씩 자는 통잠 말이다. 애월이는 3개월이 되던 즈음부터 통잠을 자기 시작했는데, 밤에 오래 자기 시작하면서 낮잠 패턴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삶이라는 게 선을 긋듯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글로 표현하자니 그렇다. 점차적으로 낮잠 패턴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깨어 있는 시간이 점차 길어지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뭘 하고 놀아줘야 하지?」 열정이 내어준 자리에 권태감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놀이가 그 놀이. 나의 권태감을 애월이도 느끼지 않을까. 애월이도 이 놀이를 지겹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죄책감으로 멍울지는 날들이 되었다. 아기에게 정서적 안정을 주겠다던 다짐을 못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 재미있게 놀아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은 나를 보면 당혹스러웠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를 의심했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듯 엄청 재미있게 놀아주었더니(나도 정말 재밌긴 했다) 아, 한 가지 문제가 더 발생하고 말았다. 번아웃? 우울감? 아니다. 집안일. 집안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번갈아 육아휴직을 사용하기로 했다. 첫 1년은 내가, 그다음 1년은 남편이. 그래서 이번 해에는 내가 육아와 집안일은 주로 담당하게 되었다. 내년에는 남편이 그렇게, 돈은 내가 벌게 될 것이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집안일을 좀 해야 하지만(남편은 내가 꼭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애월이가 자는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해봤다. 책을 읽고 뜨개질도 하고, 소설도 쓰고 명리학 공부도 하고, 운동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서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은 옆으로 치웠다. 그리고 집안일을 아예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집안일을 추가했다. 하고 싶은 일들과 집안일에 시간을 적당히 배분하는 일은 어려웠다. 왜냐. 시간이 부족하니까.



  그러다 문득 법륜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애는 대충 키우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나는 대충 키우지를 않았다. 그러다 보니 육아가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쉬워진 면도 분명 있지만). 밀도 높은 시간을 매일매일 쉬지 않고 반복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육아가 쉬우면 왠지 이상할 것 같았다. 뭐든 애써 노력을 기울이고 하기 싫어도 열심히 해야만 한다고, 그래야만 제대로 하는 것이라는 어딘가 강박적인, 내가 터득한 건지 사회가 날 그렇게 사회화한 것인지 모를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하물며 작은 일도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일은 말해서 뭐 할까. 더 중요한 일인데.



  그리고 과거의 경험이 육아를 하는 데 나를 채찍질했던 것도 사실이다. 엄마는 집에서 부업을 하시면서 우리 남매 곁에 늘 있어 주었지만, 있어만 주셨다. 엄마는 늘 일로 바빴다. 애들 밥 차려 먹이랴, 자질구레한 온갖 집안일 하랴, 부업하랴, 때로는 일이 너무 많아 마감까지 일이 진척이 안 되어서 우리 손을 빌리기도 하셨으니 오죽 바쁘셨을까. 그런데도 나는 엄마가 나를 방임했다고, 관심도 없이 키웠다고 생각해 왔다. 여태껏 나 자신에게 속아 살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어릴 적 그 생각은 왜 그리 지배적인지, 내 자식에게는 「엄마가 나를 방임했다」는 생각이 결코 들지 않도록 하겠다며 애월이에게 완전히 집중했던 것이다.



  육아로의 몰입은 내게 시간을 가져가는 대신 아기를 향한 기쁨과 동시에 우울감을 선물로 줬다. 흑암천과 공덕천의 이야기를 혹시 아는지? 현명한 자는 둘 다 들이지 않고 물리치더라는 불교 경전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 때문에 행동양식을 바꿨다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요즘 육아로의 몰입을 조금씩 거두고 육아와 집안일과 자유시간의 균형점을 스스로 찾아가는 중이다. 이 방식이 애월이에게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기의 미래를 놓고 도박을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엄마인 내가 숨통이 트이더라는 것이다. 육아에 온전히 시간을 쏟아붓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이 나를 편안하게 하고 육아에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한다.



  부담이 없으니 육아가 쉽다. 육아라는 것이 별게 아니고 내 일상 중 하나가 된 것 같다. 책을 읽고 운동을 하는 것 같은. 애월이가 그만큼 커서 가능한 일인가 보다.



요런 자세로 자는 요즘




24. 0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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