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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Oct 21. 2020

'반응'보다 '대응'합시다

과거를 잊지 않으려는 이유(2)

ㅣ에피소드1. 비난


연애 시절, 남편과 크리스마스 이브에 연극을 보러 갔다.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대학로 소극장은 지정 좌석제가 아니어서 좋은 자리에 앉으려면 극장 앞에 일찍부터 줄을 서야 했다. 한 시간 가까이 줄을 서다가 입장 시각이 가까워질 즈음 남편이 화장실에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입장이 시작되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혼자 입장을 했고, 안내원이 가리키는 자리에 앉았다. 남편이 앉을 자리에 가방을 놓고 두리번거리는데 웬일인지 내 옆 사람이 점점 내 쪽으로 붙어 앉고 있었다. 

“더 들어가세요, 더, 쭉쭉. 오늘 만석이에요, 만석.”

안내원이 관객들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여기 자리 있어요!”

하고 남편의 공간을 사수하려 했으나 때는 늦었다. 남편의 자리는 끼어 앉기에도 부족할 만큼 좁아져 있었다. 옆사람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옆사람의 옆사람도, 그 옆사람의 옆사람도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나는 체념한 채로 말을 잇지 못했고, 그러자 옆사람은 그냥 내 옆에 완전히 붙어 앉았다. 뒤늦게 입장한 남편에게 나는 황망히 말했다.

“자리가 없어…”

자리 없이 서 있는 남편에게 안내원이 다가왔다. 자초지종을 듣더니 가장 별로인 자리, 고개를 치켜 들고 봐야 하는 1열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근데요, 저희 거의 맨 앞에 줄 서 있었거든요?”

당시만 해도 나는 감정이 복잡해지면 말을 제대로 못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자세히 풀어 보자면, 우리는 거의 맨 앞에서 오랫동안 줄을 섰다, 그런데 당신이 무작정 관객을 밀어넣는 바람에 내 남자친구가 앉을 자리가 순식간에 없어졌다, 자리에 임자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도 안 하고 꾸역꾸역 사람들 밀어넣기만 하고, 애석함의 표현은 한 마디도 없이 제일 나쁜 자리에 앉히다니 억울하다, 는 거였다. 하지만 그 말을 미처 하지 못했으므로 안내원은 “네, 만석이라 어쩔 수 없어요"하곤 다른 관객을 안내하러 갔다.


자리를 옮기며 나는 남편을 탓했다. 하필이면 왜 입장 시간에 화장실을 가느냐고. 남편은 맞다며, 자기 잘못이라며, 그런데 그렇게 따지자면 자리를 재빨리 지키지 못한 내 잘못도 있다고 했다. 듣고 보니 그 말이 옳아서 나는 더 화가 났다. 연극을 보는 내내, 크리스마스 이브가 끝날 때까지 나는 기분이 나빠서 툴툴대었다. 


by Jin


ㅣ에피소드 2. 공포


역시 연애 시절, 남편과 지하철 3호선을 탔다. 아마도 압구정이나 가로수길을 가고 있었나 보다. 열차에 올라 타서 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공포감을 느꼈다. 주말 3호선 열차 칸을 빼곡히 메운 사람들의 무표정이 섬뜩하게 무서웠다.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났다. 갑자기 우는 나를 데리고 남편은 다음 역에서 하차했고, 이후로 우리가 버스를 탔는지 걸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느꼈던 순간적이고 압도적인 공포감 외에도 나는 특정인들에게서 은근한 공포감을 느낀다. 자기 감정을 즉각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 타인을 열위로 판단하고 비웃는 사람들, 뒤에서는 험담하고 앞에서는 활짝 웃는 사람들, 불의를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사람 등등. 그런 사람들은 그냥 나쁜 사람인데, 등 돌려 버리면 그만인데, 그러기도 전에 나는 공포감부터 느낀다.


ㅣ왜 비난하는고 하니


극장에서 화장실에 간 남편을 탓했듯이, 일이 꼬일 때 상대방을 탓하는 이유를 이제는 안다. 

일이 꼬이면 아버지를 탓하던 어머니,
일이 꼬이면 어머니를 탓하던 아버지,
거실 테이블이 부서지도록 싸우시며 내게 “너 때문에 사는 것"이라던 어머니, 아버지.

기분이 나쁘면 상대를 비난하는 것이 부모님의 방어기제였다. 나는 그 방어기제를 그대로 흡수하여 연애시절부터 남편을 달달 볶았다. 그 방어기제가 서서히 약화된 것은 아이를 낳고 내가 부모가 되어 내 부모의 과오를 인지하면서부터다. 사람들은 내게 나쁜 기억을 잊으라고 했는데 잊지 않고 곱씹으며 퍼즐 조각을 맞추었더니 이제는 일이 꼬여도 별로 화가 나지 않는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상대를 비난하고픈 충동이 들 때, 그 충동의 뿌리를 아는 것만으로도 충동을 잠재울 수 있다. 


ㅣ왜 공포스러운고 하니


어릴 적 매일 맡겨지던 이웃집의 딸, S양은 줄곧 나를 따돌렸다. 나보다 세 살 위인 S양의 따돌림은 매우 대담해서 어른들이 보는 앞에서도 자행되었고, 이따금 본인이 남동생과 함께 우리 집에 놀러와서조차도 나를 따돌렸다. 나의 부모님은 S양네에 나를 맡기며 신세를 졌으므로 S양의 못된 행동을 꾸짖지 못했고, S양의 어머니는 S양의 드센 기세에 밀렸으며, 오로지 S양의 아버지만이 S양을 거세게 다그쳤다. 나는 S양의 아버지가 부재한 평일 낮 시간을 매일 S양의 집에서 S양과 보내는 현실이 불만스러웠지만 부모님께 감히 표현하지 못했다. 부모님의 근무 시간 동안 달리 갈 곳이 없으리라 믿었고, 나를 돌보아주는 S양의 어머니께 감사해하라고 누누히 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S양이 우리 집에 와서까지 나를 따돌리는 일은 어린 나이에도 억울했기에 딱 한번 아버지께 부탁한 적이 있다.

“S언니 있잖아, 이제 우리 집에 못 오게 해 줘.”

아버지는 고함을 치셨다.

“시끄러워!”

그것이 대화의 전부였지만 초등학교 1학년 나이에도 고함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S양의 아버지는 내 아버지의 대학 선배이자 교직 선배였고 술친구이자 이웃사촌이었다. 그런 이의 자식을 차단하는 일은 아버지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을 테다. 


S양은 공부 못하는 아이를 무시했고, 오래된 주택에 사는 아이를 무시했다.

“H 걔는 한글도 못 읽어, 하하하.”

“J네 집 되게 못사는데. 걔네 집 버스 터미널 뒤에 있어. 거기 언덕 위에 촌스러운 한옥, 하하하.” (그 시절에나 아파트가 최고인 줄 알았지, J네 집에 직접 가본 나는 반질반질한 나무 마루에 걸터 앉아 향긋한 목재향을 맡은 기억이 생생하다.)


 다른 애들을 저렇게 무시하면 안 되는 거 같은데, 조용히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 사람 앞에서 깔깔대며 무시하는 S양의 웃는 얼굴이 나는 무서웠다. 그리고 S양을 제지하지 않는 어른들까지, 덩달아 무서웠다.

by Jin


3호선 열차 안에 빼곡하던 무표정들에서 나의 무의식은 S양의 언행을 묵인하던 어른들을 보았을까? S양이 저지르는 무시와 조롱과 따돌림 뒤에 선 방관자들. 울다 잠든 나의 눈꺼풀을 벌려 손가락으로 찌르던 S양, 여럿이 놀다가도 일순간 나를 외톨이로 만들던 S양. 매일 오후 싫어도 가야 했던 S양의 집,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앉아 있으면 오심이 끼치고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던 그 집, 통증을 호소해도 빠져 나오지 못했던 그 집, 어른들의 술자리로 주말에도 가 있었던 그 집, S양 때문에 훌쩍훌쩍 울어도 어른들은 음주와 수다 삼매경이던 그 집. 그래서 S양과 그 어른들을 닮은 사람은 싫어지기도 전에 무서웠나 보다.


ㅣ반응보다 대응을


무섭다고 무서워하기만 한다면, 화가 난다고 화만 낸다면, 방어기제에 따라 반사적으로 행동한다면 그것은 ‘반응(reaction)’이다. <마음을 치료하는 법(Maybe You Should Talk to Someone)>에서 로리 고틀립(Lori Gottlieb) ‘반응'이란 반사적으로 일어나고, ‘대응(response)’이란 선택에 의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Reacting vs. responding = reflexive vs. chosen). 즉, 화가 난다고 상대에게 화를 냈다면 반사적으로 ‘반응'을 한 것이고, 화가 나지만 분노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강구했다면 ‘대응'을 한 것이다. 같은 책에서 고틀립은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E. Frankl)이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기록한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의 구절을 인용한다.

“자극과 대응(response)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 속에서 우리는 대응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좌우된다.” (나는 로리 고틀립의 책도, 빅터 프랭클의 문장도 영어로 읽었다. 정식 번역서는 아마 다른 표현으로 번역했을 수 있다.)

과거의 퍼즐을 맞추고 나니 ‘반응'하기보다 ‘대응'하는 일이 늘었다. 내 방어기제가 왜 이 모양인지, 왜 이런 식으로만 반응하는지, 어렴풋이라도 알고 나니 다스리기가 한결 쉽다. 예전보다 성장하고 행복해진 느낌이다. 과거를 잊지 않으면 그런 이점이 있다.


덧1.

자꾸 떠오르는 기억은 마치 너저분한 방안과 같아 우리에게 해결책을 찾으라고 요구한다. (중략) ‘야,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잖아! 어서 문제를 해결하란 말이야!’ 하고 우리를 달달달 볶는다. - 김재현, <왜 나쁜 기억은 자꾸 생각나는가>


덧2. 오랜 시간이 흐르고 S양의 어머니는 S양에게 물었다고 한다. 어릴 적에 Jin을 왜 그리 싫어했느냐고. S양의 어머니가 전한 S양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아빠가 나보다 걔를 더 좋아했으니까.” 




과거를 잊지 않으려는 이유(1): https://brunch.co.kr/@jin8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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