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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하 Jan 13. 2023

아이고, 건망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모른다는 것은 인생의 수레를 안개 속에 굴러가게 해놓고, 말고삐도 쥐지 않은 채 쿨쿨 잠들어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위험천만한 일이다. 인생의 수레가 제대로 굴러가게 하려면, 말고삐를 꾹 쥐어 언제라도 제대로 조절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자세를 길러주는 것은 <자신에 대한 평가>이다. 자신이 어떤 상태인가를 안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고, 그랬을 경우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일은 분명 제대로 가야하는 삶에 좋은 효용을 나타내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오솔길에서나, 나무 그늘 아래서나, 개울가에서나, 무덤가에서나, 또 다른 어떤 것에서나 매우 빈번할 정도로 나를 평가하기 위한 검진을 실시한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다방면으로 자각하고, 각성하거나 반성하거나 하여 나아갈 방향을 바로 잡는다. 물론 마음으로써 말이다. 실천의 여부는 너무 부끄러우니 밝힐 수가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실천만 제대로 따라주었으면, 나는 분명 깊은 혜안이 있는 성인군자쯤은 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턱도 없는 인품이 현실이고 보면, 지지리도 실천을 안한 셈이다. 기껏 플래시보 효과를 누리는 정도라고나 할까? 그래도 그로 인해 최소한의 도덕과 교양이라도 지키고 사니, 자신에 대한 평가는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일이 분명한 만큼 무조건 하고 볼 일이다. 이런 나야 어쨌건, 당신만큼은 제대로 된 삶의 효용을 위해 자신에 대한 평가에 따른 실천도 함께 가져야 하리라. 

  아무튼 그런 과정에서 내가 나를 가장 분명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기억력이 도대체 없다는 사실이요, 또 하나는 건망증이 심하다는 것! 그런데 이 둘의 유사한 점은 없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도 성적을 젬병으로 만든 기억력은 거의 유전적으로 이미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천성의 기억력’이요, 건망증은 뒤늦게 출생한 ‘신생아’이니까 말이다.   


  진종일 잔뜩 흐려있던 날씨가 자정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 성질을 부리기 시작하는지 후두둑 빗방울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더위로 체증된 시공간을 환기할 때가 바로 이때라는 듯 툇마루로 나간다. 시원한 멋진 공기의 즐거움이 당장에 밀려온다. 그러나 거기에 편승하여 밀려온 것이 또 하나 있다. 고기 굽는 냄새다. 

  깊은 밤에 고기 굽는 냄새라고? 이런 의문이 지당할 테지만, 나는 태연히 답변할 수 있다. 때는 피서철이요, 내 집 근처에는 매우 훌륭한 피서지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피서지 탓에 내가 사는 마을의 뒷집, 옆집 등에는 도시에서 피서를 온 자식과 손자들의 즐거운 울림이 곧잘 들려오곤 한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왁자지껄 떠들며 놀기도 한다.  따라서 나는 솔솔 풍겨오는 고기 굽는 냄새가 그런 탓이라고 여긴다. '누구 집이지?' 하면서 말이다. 

  골목길 사이사이로 아련하게 흐르는 시골의 고기 굽는 냄새는 신기할 정도로 나그네의 향수심을 자극한다. 그런데 나는 실제로 이 마을에서는 나그네와 같다. 귀촌한 지 20여 년이 되었어도 마을 사람과 별 내왕 없이 홀로 외딴 섬 생활하듯 살아간다. 마을 사람들이 보기엔 참으로 낯선 나그네일 수밖에 없다. 나 역시도 그러한 감정으로 산다. 

  그런 나그네 심정인 탓일까. 계속해서 은은히 흘러드는 고기 굽기는 냄새에 그만 가슴이 울컥 일렁인다. 그러나 착각도 유분수지!


  “아이고~~~”


 이내 비명을 지르고, 급히 달려간다. 달려간 곳은 주방이었고, 주방은 문을 열자마자 연기가 자욱하다. 뭐, 향수의 고기 굽는 냄새라고? 천만에 말씀이다. 고기 굽는 냄새는 바로 야식을 하기 위해 올려놓았던 돼지찌개가 새까맣게 타는 비극의 냄새이고, 내 건망증의 절정체다.  


  요즘 들어 매번 이런 식이다. 도대체 냄비가 성한 것이 없다. 그런가 하면 며칠 전에는 만남의 약속까지 잊어서 숯불처럼 발개지는 얼굴색을 띠어야했다. 또는 외출을 하면서도 내내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를 그치지 않는데, ‘도대체 내가 방문을 잠갔나, 잠그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방문 열쇠를 방안에 두고 방문을 잠근 일 역시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아예 방 옆에 달려 있는 쪽문에 나만이 응급조치로 열쇠 없이 열 수 있는 장치까지 해 두었을 정도이다. 행여 이 글을 읽고 이용할 생각은 하지 말아 달라! 그 장치는 매우 은밀하고, 풀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렇게 애써 문을 연들, 초라한 홀아비 살림냄새 뿐이리라!


  나의 이런 건망증은 생명의 도태 과정에서 나타나는 극히 기본적인 것인지 모른다. 50대까지만 하여도 이런 현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지만, 60대를 넘어서부터 매우 당연하다는 듯 나타나 ‘당신도 이제 저물어가는 달리기 시합에 참가한 것이오.’라고 외치고 있지 않은가! 야속한 말이다. 인생의 연륜이라는 성스러운 양분의 축적으로 인한 결실과도 같거늘, 그에 대한 보상은커녕 왜 이렇게 상실의 태풍을 몰아쳐 낙과를 만드는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내 자신을 까만 냄비로써 다시 확인하게 되니 남은 삶이 환기된다. 느리건 덜컹대건 삶의 수레가 굴러갈 길은 분명 남아있는 만큼 더욱 정신 바짝 차리게끔 말이다.

  사실 이렇게 일이 터진 뒤 각오를 다지는 일은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되어 온 일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뇌의 작용에 좋다는 약초도 먹어보고, 즉각 기록하는 습성이나 반복해서 되돌아보는 습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을 해왔다. 그렇게 신경을 써온 탓에 한결 나아진 측면은 분명이 있다. 실수의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모자란 모양이다. 기억력을 붙잡는 노력이 계속되어함을 오늘밤 다시금 인정케 된다.  


  검게 탄 냄비를 들고 그런 각오를 다지며 위쪽의 덜 탄 부분이라도 먹으려고 긁어내자, 거기서 조금 전 밤비를 바라보며 향수에 잠겼던 구수한 돼지불고기 냄새가 피어오른다. 향수는 사라졌지만 식욕을 돋우는 참 살맛나는 냄새다. 이렇게 입맛으로 희망이 솟아나는데, 어찌 또 말고삐를 꾹 쥐지 않을까! [끝]   

 



[사진출처] ALL PIXBAY -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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