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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하 Mar 13. 2024

동경의 바다

저서 [문밖의 순수] 중에서

 

   흙과 자갈이 득실한 신작로는 거의 진종일 누워 잠들어 있었다. 사람과 달구지가 간간히 지나갔지만, 그것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멀리서 한줄기 뿌연 먼지가 일어나면 그때서야 신작로는 큰 길로서의 눈을 뜨곤 했다. 

  어린 나는 그런 신작로가 어디로 뻗어 있는지 몰랐다. 신작로를 따라가면 나오는 것은 언제나 산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오직 산만이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길게 접은 손수건을 가슴에 달게 되었고, 책보자기를 둘러매게 되었다.

  “땡그랑, 땡그랑!” 아침녘 마을과 지척이었던 학교에서 어김없이 울려오는 그 종소리로부터 달음박질은 시작되었다. 책보자기에 몇 권의 책과 함께 싸인 양철필통 속에서 몽당연필 한두 자루가 영락없이 ‘탈그락 탈그락!’ 소리를 냈다. 그런 땡그랑 소리와 탈그락 소리는 어린 나의 머리에 ‘감각’과 ‘지식’이란 이름의 싹을 돋게 했다. 그것은 또한 꿈과 이상의 시작이었으며, 단순에서 이치로의 탈바꿈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어린 나는 저 크고 높은 산이 있는 것처럼 넓고 깊은 바다라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과 선생님은 넓은 바다를 펼쳐주었고, 그 바다엘 가면 섬도 있다고 했고, 등대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학교만한 배도 있다고 했다. 또한 집채만 한 고래와 별 같은 불가사리, 낙하산 같은 해파리도 있다고 했으며, 귀에 대고 가만히 듣노라면 바람소리도 들려오는 소라껍질도 있다고 했다. 동화 속에 나오는 인어공주도 거기에 산다고 말했다. 당연히 호기심이 일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정말로 바다를 보고 싶어 하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나는 지금도 믿어지질 않는다.




  어느 날 아버지를 따라나선 도시에서 그토록 보고 싶던 바다를 대할 기회가 있었다. 부산이었고, 지금의 자갈치시장 근처 어디였으리라 생각된다. 확실히 학교만한 배는, 아니 학교보다 훨씬 더 커 보이는 배는 있었다. 그러나 바다에만 가면 볼 수 있으리라 여겼던 등대도, 집채만 한 고래도, 불가사리와 해파리도, 바람소리가 난다는 소라껍질도 없었다. 물론 인어공주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질퍽하고 어지러운 풍경과 매우 낯선 비릿한 냄새, 또한 정신없이 시끄러운 소리만이 전부였다. 

  이따금 울려 퍼지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뱃고동 소리도 무의미했다. 차라리 때때로 하늘을 가로지르며 빠르게 날아가는 쌕쌕이 소리가 훨씬 듣기 좋았다. 쌕쌕이 소리에는 한순간 온 몸을 훑고 가는 저릿한 쾌감이 있기 때문이다. 

  바다는 내가 동경한 세계가 아니었다. 가슴의 불꽃도 전혀 타오르지 않았고, 그리운 것들에 대한 기쁨의 향연도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무심한 감각으로 바다에 대한 동경은 그만 끝나버리고 말았다.


  아버지 탓이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어린 나를 대해의 희망을 향한 태종대의 등대나, 파도소리 철썩이는 남해의 갯바위나, 조개껍질 반짝이는 어느 해안의 아름다운 백사장에 데려다 놓지 않았다. 맨 처음 바다를 접하는 어린 나에게 하필이면 무지막지하게 혼잡한 부둣가라니……. 아버지는 어린 나보다 더 감성이 없었거나, 자식의 마음을 전혀 몰랐거나, 둘 중 하나의 재미없는 아버지였음이 분명했다. 만약 아버지가 어린 나의 마음을 알고 푸른 대양이 펼쳐지는 맑고 밝은 해안에 나를 데려다 놓았더라면 어땠을까? 어린 내가 지녔던 동경심에 크나큰 기쁨을 주었을지 모를 일이고, 곧바로 담배파이프를 입에 문 마도로스나 섬마을 총각선생님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부전자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장소가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찌 그토록 감흥이 없었던 걸까? 최소한 어떤 경이로움과 신기함 정도는 느꼈어야만 했다. 그런데도 늘 바라보는 앞마당 쳐다보듯 어떤 감성도 없이 묵묵히 바라만 보았으니, 바다와 나 사이에는 어떤 이질감이 있었음이 분명했다.



  오랜 날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내가 원한만큼 만(灣)의 백사장에서 낭만도 품어보았고, 해안단구의 갯바위에 서서 낚싯줄도 던져 보았고, 곶(串)의 언덕에 앉아 푸른 대양을 향해 꿈의 날개도 펼쳐보았다. 그런 중에 느껴야만 했던 바다는 부산의 부둣가에서 느꼈던 절망스러운 경험이 얼마나 큰 오해였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잠시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뜻하지 않은 불평으로 바다를 판단했음을 나는 깨달아야만 했다. 

  자아의 성장 속에서 인생은 이루어진다. 나와 바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영원히 다 누릴 수 없는 온갖 정서의 흐름에 따라 바다는 삶과 죽음, 현실과 이상, 예술과 철학, 또는 사랑과 낭만 등으로 밀물져 들어왔다. 더욱 자라면서 접하기 시작한 바다는, 그렇게 아무리 읽고 읽어도 끝이 없는 무궁한 감각의 세계였다.  

  언젠가 여명이 시작되는 새벽바다를 보았을 때, 얼마나 힘찬 정열을 보았던가! 언젠가 조그만 어촌의 아침바다에서 얼마나 활기찬 생활을 보았던가! 아아, 언젠가 절경의 해안에서 정감어린 연인과 다정히 바라보았던 바다는, 또한 얼마나 상쾌하고 명랑했던가!

  나는 알게 되었다. 겨울바다가 부여잡은 미망인의 수정목걸이와 태풍의 바다가 몰아치는 비정의 전설을, 달빛 어린 바다가 드리운 환상의 애정과 보슬비 내리는 바다가 울려내는 플롯의 고요한 무곡을. 또한 알고 있다. 노아의 바다와 모세의 바다는 징악과 기적의 바다요, 이순신과 장보고의 바다는 민족혼이 담긴 전쟁과 경제의 바다요, 콜럼버스와 신드바드의 바다는 탐험과 모험의 바다이며, 셸리의 바다는 예술인 동시에 죽음의 바다였고, 문무대왕의 바다는 애국의 바다, 박제상 부인의 바다는 영원한 기원의 바다였음을. 

  물론 밤낮없이 투망과 양망(揚網)의 고된 노력을 해야만 하는 생존수단으로서의 바다는 아니다. 내게는 아직 그럴만한 기회도 없었다. 따라서 내가 느끼고 아는 바다는 오로지 예술 속에서 유유자적하게 즐기라는 『공자』의 「유어예(游於藝)」적인 세계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설로부터 추상으로, 추상으로부터 실상으로, 또는 실상으로부터 이상으로 이어지는 바다의 숨결은 정녕 물질적이되 정신적인 것이며, 현실적이되 이상적인 것이다. 그러한 바다는 또한 논리적이어서 허구를 품지 않는다. 


  욕지도 여행을 위해 여객선에 올라 항해했을 때, 배 옆구리에서 너울대는 물결에 현혹되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짙푸른 심연의 색조는 무시무시할 정도의 미증유의 힘이었고, 그 때문에 내 영혼은 절대 흩어질 수 없는 일체의 정서를 지닌 채 무언가를 해석하려고 오랜 시간 몰아지경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상태에서 나는 뜻밖에도 내 자신이 얼마나 많은 할 일을 두고 있는지 알았다. 바다가 내게 어떤 말을 해주었는지도 모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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