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교토의 골목에서
15년 전, 교토 여행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나는 교토 특유의 반듯한 길과 오래된 골목의 분위기를 좋아해서 자주 방문했었는데, 교토에 갈 때면 항상 하루 정도는 비가 왔던 것 같다.
그날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 귀찮아.
여행 중 비가 오면 너무 번거롭고 싫었다.
그렇게 투덜거리며 좁은 골목을 걷고 있는데, 초등학교 1~2학년쯤 되어 보이는 한 여자아이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비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우산을 젖히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골목길을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셔터를 눌렀고, 그 찰나의 장면이 사진 속에 남았다.
길을 걸으며 우연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그 순간순간의 구도를 나만의 시선으로 담아내는 거다. 그리고 그렇게 찍힌 수많은 사진들 중에는 중에는 시간이 지나도 유난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사진이 있는데, 바로 이 사진이 그런 한 장이다.
일주일 전쯤, 우연히 오래된 사진을 정리하다가, 바로 이 사진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고 문득 그림으로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왜 이 사진이 유난히 맘에 드는 걸까?
나는 어린 시절에 대한 알 수 없는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만이 가진 천진난만함과 순진무구함을 바라볼 때, 온몸에 엔돌핀이 퍼지는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아이들을 보며 생각한다. 어쩌면 저렇게 반짝거리는 눈을 가지고 온 힘을 다해 매 순간을 살아갈 수 있을까? 아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힘인 것 같다.
어른이 되어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깨달은 한 가지는, 내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의 추억을 이야기할 때, 내 머릿속에는 그 추억들 대신 텅 빈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사진이 좋은 걸까? 그에 더해 그림을 그리면서 나에게 없었던 잔잔한 순간들, 따뜻한 에피소드들을 하나둘씩 채워 넣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언젠가 여행에서 만난 순간들, 그리고 내 아이들이 보내는 흔한 일상을 그림으로 남기면서, 다시 기억을 만들어 가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렇게 완성된 작은 행복과 따뜻함이, 내 안에 오래도록 스며들어 새로운 기억으로 남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