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맛있는게 너무 많다. 그리고 맛있는건 높은 확률로 살을 찌운다. 요즘 나는 말그대로 입이 터졌다. 원래도 잘먹었지만 이젠 안 먹던 것까지 들어간다. 화이트 외에 초콜릿은 입에도 안 대던 확고한 취향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밀크, 헤이즐넛, 모카 가리지 않고 먹는다. 심지어 다크까지도. 초콜릿이 맛있다니. 40년 인생에 참 적응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맛있다. 이렇게나 맛있을 일이야 싶을 정도로. 일주일 전이었던가. 신랑이 자신도 먹고 애들도 먹으라고 사다 놓은 초코과자 3통을 앉은 자리에서 먹어 없앴다. 처참하게 나뒹구는 빈 껍질들을 보며 번뜩 정신이 들었지만 이미 내용물들은 모두 내 배 속에 들어간 뒤였다. 그날 저녁, 간식 있던 자리를 뒤적거리던 신랑이 애먼 둘째를 보며 한소리한다. 언놈이 과자를 한번에 다 먹어버렸어! 생각한다. 이대로 둘째에게 덮어씌우고 모르는척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솔직히 얘기하기로 한다. 여보. 그놈이 나야.
그렇게 입 터진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 둘째 어린이집 소풍날이 됐다. 이옷 저옷 입어보았지만 당최 맞는 바지가 없었다. 차곡차곡 개켜 두었던 옷들이 순식간에 여기저기로 던져진다. 순간 막막했다. 정말 입을게 없는데? 결국 건조기에서 어제도 입고 그제도 입고 그끄저께도 입었던 바지를 꺼냈다. 덜 말랐지만 할 수 없다. 입은 채 드라이기로 대충 말려 집을 나서며 다짐했다. 다이어트를 해야겠어.
식단을 시작하고 운동을 했다. 그러길 5일째. 몸이 제법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스스로 짠 계획은 4주를 이렇게 보내는거였고 시작이 제법 순조로워 보였다. 안 들어가던 바지들이 며칠 새 수월하게 잠겼다. 그런데 그날 저녁, 신랑이 치킨을 사왔다. 입 짧은 첫째가 치킨치킨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치킨을, 그것도 한 마리 반이나 사온 것이다. 초점 없이 앉아 있는 내게 신랑이 말한다.
"포기하면 편해."
내 다이어트의 적. 도움이라곤 손톱만큼도 안 되는 자칭 나의 아군. 그는 평생 살이라곤 쪄본적 없는 높은 기초대사량의 소유자다. 심지어 잠들기 전 라면에 만두까지 먹고 자도 속이 편하다고 했다. 그가 웃으며 속삭인다. 포기하면 편해. 손이 닭다리 하나를 잡는다. 다리 하나가 금세 사라진다. 포기하면 편해. 날개도 먹고 몸통도 먹는다. 이제 목이 마르다. 포기하면 편해.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하이볼 2잔을 만들어 휘휘 젓는다. 하난 내 거, 하난 니 거. 거봐, 포기하면 편하다니까. 그날 저녁 치킨에 하이볼까지 마시고 애들 재우며 같이 잠들어 버렸다.
이놈의 남자야 편하긴 뭐가 편해. 다음날 바지는 다시 들어가지 않았고 전날의 추억을 잊지 못한 허기진 위는 뇌에게 읍소하여 내 손을 움직였다. 아이들의 간식통이 또다시 가벼워졌다. 속이 눈에 띄게 줄어든 간식통을 올려놓으며 쓸쓸히 중얼거렸다. 내일부터 다시 해야겠어. 다이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