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부터 줄곧 라디오를 들어왔다. 우울한 기분이 들 때면 유독 더 라디오를 찾았는데, 편안한 목소리를 일방향적으로 들으며 길게는 두 시간 동안 아무 생각을 안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밤 열 시 늦은 시간,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은 꽤나 괜찮은 일이었다.
익숙한 전주가 흐르고 오늘의 하루를 정리하는 멘트 그리고 첫 곡이 흐른다. 나의 감정을 알아주는 것 같은 선곡에 항상 놀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감정에 따라 노래가 다르게 들렸지 않았지 싶다. 아이러니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목소리라 생각하면서 그 사람의 멘트 하나하나, 노랫말 하나하나에 내 감정을 듬뿍 담고 있었다. 좋아하던 그 디제이의 마지막 방송 때는 중학생치고 깊은 사랑을 했던 것 마냥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자취를 시작하며 적막을 마주할 때가 많아졌다. 고요함이 싫을 때면 백색소음 마냥 라디오를 틀어놓는다. 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침대에 누워 복잡했던 감정들을 생각해본다. 이렇게까지 가사에 집중했던 적이 있나 싶다. 디제이의 마지막 멘트와 함께 오늘의 감정도 정리가 됐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