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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izelnut Jul 29. 2020

내 몸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내 몸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귓가에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깼다. 자는 동안 몸이 떠오르는 것을 느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요 며칠 동안 자주 있었던 일이다. 시계탑을 올려다보니 벌써 아침 여섯 시다. 정장 차림을 한 50대 아저씨들이 하나 둘씩 플랫폼으로 줄을 선다. 아직까지도 형광 색 조끼를 입은 아줌마, 아저씨들이 여기저기서 쓰레기를 줍는다. 아침 6시가 가장 혼란스러운 시간이다. 출근하는 직장인, 퇴근하는 환경미화원, 집으로 들어가는 술 취한 사람들이 한 데 어우러져 있다. 항상 선잠에 드는 나는 이 시간쯤에 잠에서 깬다.


20살 때부터 살던 집에서 쫓겨 나 ‘청숙자’가 된지도 벌써 2년이 넘었다. 쫓겨난 당일은 도저히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했다. 일주일에 몇 번씩 마포 대교를 찾았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친구들과 마신 소주에 취해 갈 곳 없이 지하철 역에서 잠들기를 두어 차례, 그대로 그 자리가 내 새로운 보금자리가 됐다. 생각보다 살만 했다. 이제는 워낙 역에서 밤을 새는 청년들이 많아 ‘청숙자’라는 말도 생겼다. 노숙자 아저씨들과 싸움에서 이겨야 자리를 타 낼 수 있다는 것도 옛말이다. 이제는 집 없는 청년들 80만명 시대다. 지하철 역에는 가지 각색 사람들이 잠을 청하러 온다. 우습게도 우리 덕분에 환경미화원의 일자리가 늘어났다고 한다. 도저히 역에서 자는 청년들을 막는 것이 감당이 안되니까 청결이라도 힘쓰고 있다는 것이 인터넷에 우스갯소리로 들려온다.


   ‘건설 위기’ 가판대를 지나가며 곁눈질로 본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나있다. 건설업이 휘청거린다는 소리가 벌써 몇 년째이다. 정부가 내 놓은 부동산 정책에 갭투자다, 재태크다 모두 옛말이 됐고, 새로 올라가는 건물은 보기 힘들어졌다. 어차피 힘들게 지어도 분양이 안되자 건설업체들은 돈 되는 집만 만드는 꼼수를 썼다. 초고가 아파트를 내놓으며 명품 마케팅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보여 주기식 명품 집은 인기가 많았다. 세에 세를 놓기도 하고 쉐어 하우스로 영업을 하기도 하며 새로운 비즈니스가 형성됐다. 부자들의 돈 놀이는 새로운 방법으로 계속됐다. 반면 너도 나도 돈 되는 집만 만드니 1인 가구는 갈 곳을 잃었다. 아무리 1인 가구를 위한 공간 마련을 외쳐 봤자 돈 안되는 일에 기업들은 뛰어들지 않았다. 


2032년, 내가 딱 28살 이었을 때 그나마 서울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우리 임대 아파트도 결국 재개발 바람을 이겨내지 못했다. 몇 안 남은 저가 아파트 단지였기 때문에 시설은 낡았어도 젊은 층에 꽤 인기가 많았는데 집 주인들은 명품 아파트 단지가 들어오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프리미엄 아파트 분양권 배분에 우선 순위를 준다는 실속 없는 조건만 내세우고는 세 들어 살던 우리를 모두 내쫓았다. 나는 졸업하지마자 9급 공무원으로 누구보다 착실하게 돈을 모은 통장을 수 차례 펼쳐 확인했지만 분양권은 물론 입주 회비를 낼 돈 조차 없었다. 


  자는 곳은 추레하게 보여도 일단 씻고 출근하면 남 부럽지 않게 직장 생활을 한다. 나름대로 절약해서 모은 돈으로 카페도 꼬박 꼬박 간다. 하지만 그 놈의 집이 문제다. 주머니에서 찾은 열쇠로 문을 열고 쿰쿰한 냄새가 나는 수건으로 얼른 머리를 훔친다. 셔츠는 나름 주름이 생기지 않게 잘 접어 놨다. 그래도 옷걸이에 걸어 놓은 게 아니라서 조금은 쭈글쭈글하다. 2년 전 같았으면 그게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었겠지만, 이제는 이런 일은 아무렇지도 않다. 가는 길에 화장실에 한 번 더 들려서 물만 조금 묻혀주면 금새 펴지곤 한다. 빳빳한 셔츠는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나름 만족스럽다.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 그대로 개찰구로 향한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지하철 역에서 잠을 설치고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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