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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삼모델 Mar 29. 2021

애니메이션을 보고 베네치아 공동묘지를 갔다

애니메이션 'ARIA'를 보고 간 베네치아

이탈리아어로 베네치아 영어로 베니스라 불리는 이 도시는 셰 익스피어 고전 소설 '베니스의 상인'에서 나오는 것처럼 오래되고 유명한 도시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만화 'ARIA'에 나오는 베니스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아마노 코즈에가 그린 만화 'ARIA' 는 남녀 간의 애정 싸움이나, 악당을 때려잡는 극적인 전개가 아 니라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 곤돌라 수 상 안내원을 주제로 한 일상물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제 작한 잔잔하고 순수한 분위기의 애니메이션은 공부로 인해 힘들 어하던 고등학생인 나에게 위로가 돼주었다.

애니메이션 'ARIA' (출처 : IMDb)

- ARIA

만화 'ARIA'의 배경은 지구에 있던 베네치아가 이미 해수면 상 승으로 수몰되어버린 미래이다. 그런데 화성을 테라포밍하는 과 정에서 빙하가 예상 이상으로 녹아버려, 90%가 해수면인 물의 행 성이 되어버린 화성에 베네치아의 건물들을 본떠 네오 베네치아 를 건설하고 관광 도시로 활용하고 있다. 주인공은 이제 막 곤돌 라 사공이 된 신참으로, 곤돌라를 몰며 여기저기 다니는 수상 안 내원의 모습과 특이하고 다 채로운 수상도시, 네오 베네치아의 모 습이 너무 평화로워서 편하게 감상하기 좋다. 잔잔한 음색으로 칸쵸네(이탈리아 뱃노래)가 들리는 OST는 애니메이션에서만 느 낄 수 있는 특이한 경험이다.

리알토 다리에서

- 현실은 당연히 역시 다르다

물론 실제 베네치아 하고는 다르다. 사공(곤돌리에)들은 하루 종일 배를 모든 직업답게 옷을 걷어붙인 팔에는 근육이 가득한 아 저씨들이 검은색 곤돌라를 몰고 있었고 생활하수와 섞인 바닷물 은 더러웠다. 리알토 다리는 관광객을 태우기 위한 곤돌라와 야외 식당으로 북적이고 근처 명품 매장에는 중국인들이 너무 많아 여 기저기서 중국어가 많이 들린다.


그리고 일단 베네치아 시가지 안으로는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못 들어온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버스용 대형 곤돌라(바포레 토)를 타는 승강장에서 배를 타고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배차 간 격이 크고 주요 섬과 대운하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에 가까운 곳은 걸어가는 편이 낫다. 그런데 길이 좁고 복잡해서 구글 지도를 보 면서 가도 길을 잃기 쉽다. 하지만 베네치아가 엄청 넓은 동네는 아니라서 길을 잃고 헤매더라도 조금 돌아갈 뿐, 아름다운 풍경을 조금 더 볼 수 있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산 마르코 광장과 건너편 뷰

- 곤돌라는 비싸다

곤돌라는 20분에 80~100유로로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대부분 4~5명에서 나눠 내며 관광객으로 복작 복작 거리는 수로를 한바 퀴 돈다. 돈이 없었던 나는 20유로나 되는 가격을 나눠 내며 사람 들로 북적북적한 곤돌라에 굳이 타서 내 환상을 깨고 싶지는 않았 다. 나중에 다시 온다면 혼자 유유자적 곤돌라를 타고 싶다.


- 베네치아의 공동묘지, 성 미켈레 섬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네오 베네치아는 실제 베네치아와 많은 차이가 있지만, 상당 부분 거의 똑같이 재현되어 있다. 베네치아 의 중심인 산마르코 광장은 그대로 있고 주요한 성당과 유리 세공 으로 유명한 부라노 섬 같은 경우는 애니메이션에도 그대로 나온 다. 그 중 하나의 에피소드로 나오는 것이 베네치아의 공동묘지인 성 미켈레 섬이다. 주인공이 베네치아의 유령에 홀렸다가 수호신 고양이에게 구해진다는 판타지스러운 내용의 배경이며,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가 불명확한 만화의 설정이 드러나는 장면이자 가 장 긴박감 넘치는 장면이다. 그래서 난 여기를 꼭 가고 싶었다.

성 미켈레 섬은 공동묘지답게 베네치아에 살고 있는 한인 민 박 사장님도 모를 정도로 관광지로 인기 있는 편은 아니다. 애초 에 흑사병 환자를 격리하는 목적으로 사용되던 곳이고 그대로 베 네치아 사람들의 공동묘지가 되었다. 바포레토를 타고 무라노 섬 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온 이탈리아인 몇 명만 내 리고 나를 제외한 외국인은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고인을 추억하 는 무덤 앞에 놓은 사진의 상태와 한인 민박 사장님의 지인이 얼 마 전에 이곳에 묻혔다는 얘기를 들어보면, 아직도 이 곳에서 장 례식이 진행되는 것 같았다. 항상 관광객들로 인해 축제같은 베네 치아의 분위기와 다르게 이 곳은 너무나도 조용해서 유령이 나올 것 같은 상상이 충분히 가능한 곳이다.

베네치아의 광장과 뒷골목길

이 외에도 애니메이션에 나온 것과 똑같은 장소가 여러 군데 있 다. 사람이 너무 많고 더워서 하나하나 장면을 비교하며 찾아가기 에는 힘들지만, 베네치아를 여행하다 보면 애니메이션에서 본 것 같은 묘한 기시감을 느끼는 장소가 더러 있어서 여행하는 내내 익 숙한 즐거움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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