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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위로 떨어진 물방울 하나

by 이쥴



이제, 더는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모든 걸 포기해버리고 싶을 만큼 지쳐서,

이제는 끝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종종 찾아옵니다.


마치 물컵에 물이 차오르다가, 표면장력으로 볼록하게 올라와 위태롭게 찰랑거리는 상태에서

어디선가 조그만 물방울 하나가 떨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작은 방울 하나에 컵 속 물이 한꺼번에 넘쳐흐르듯,

그동안 간신히 붙잡고 있던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그 물방울은 외부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더라고요.

이제는 다른 사람의 말실수나 무심한 행동에는 오히려 무뎌져 그러려니 하게 됩니다.


저를 무너트리는 것의 대부분은,

내 실수나 내 안의 실망감, 혹은 내가 저지른 작은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더라고요.


하루 종일 여기저기 부딪치며 업무를 처리하고,

중간중간 아이들의 요구나 문제를 해결하며 퇴근길에 문자를 보내다 앞차를 들이받거나,


그래도 엄마 노릇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퇴근길 지친몸을 이끌고 들린 마트 과일코너에서

수박 한 통을 들다 놓쳐 그대로 바닥에 산산조각 내버리고,


새벽 출근도 모자라 야근까지 하고 돌아온 집에서

과태료 폭탄 통지서를 마주하게 된 후,


냉장고에 넣지 못하고 옆 테이블 위에 그대로 둔 채, 며칠 사이 썩어 문드러진 반찬을 발견하거나,

또는 가방을 열었다가, 소지품들이 엉망으로 흐트러진 채 열려져있는 화장품과 뒤섞여 있는 모습을 마주하게 되기도 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별일 아닐 수도 있는 작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위태롭게 하루를 버텨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그 순간,

작은 물방울 하나가 떨어지면서 마음의 컵은 넘쳐버리고 맙니다.


젖은 눈을 닦아내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심호흡을 깊이 한 번 하고,

밖으로 나가 아이들에게서도 한 걸음 물러나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봅니다.

정 안 되면 그냥 침실에 들어가 조용히 누워 한숨 자버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깨어나서 다시 생각해 봅니다.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견디고 버텨낸 날들과

못 할 것 같았지만 결국 해낸 일들,

혼자 감당해 낸 것들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그러고 나면 또 생각합니다.

앞으로 못 할 일은 뭐가 있을까,

이만큼 해온 나인데.


너무 흥분하고 기뻐할 필요도,

너무 슬퍼하며 비참할 필요도 없는 하루하루.


그냥 그렇게,

오늘 하루도,

이 한주도,

이번 한 달도

또 흘려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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