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건너는 마음
세명의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병명도 모른 채 남편의 몸이 하루하루 굳어갈 때,
저는 빨리 20년쯤 훌쩍 지나,
60대의 할머니가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때가 되면,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점점 작아지는 나 자신과,
이제 또 무엇을 잃어버릴지 알 수 없는 불안과,
내일을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아 이대로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랐던 마음과,
이 고통이 언제쯤 끝날지 알 수 없어 매일을 숨죽이며 견뎌내던 날들이,
어떻게든 결말이 나 조금은 편안해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땐, 마음껏 늙을 수 있겠지요.
혹여 ‘저 과부가 이제 나이 들어 쓸모 없어졌다’며
회사에서 퇴출당해 애들 뒷바라지를 못하게 되진 않을까,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새벽마다 출근 준비를 하며 화장품으로 얼굴의 주름을 애써 감추고,
보름이면 다시 구레나룻 위로 하얗게 올라오는 새치머리를 사람들에게 들킬까 기를 쓰고 염색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때가 되면
누가 날 써주지도 않을 테니,
시간에 쫓겨 일할 걱정도 없겠지요.
그땐, 마음껏 아플 수도 있겠지요.
속이 불편한 어느 날,
느긋하게 약봉지를 들고 약국을 나서는 그런 오후가
정말 내게도 찾아올까요.
어깨가 쑤시면 동네 물리치료실에 가서
아픈 몸을 슬쩍 매만지고
쉽게 피곤해지는 한가한 오후를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무치게 그리운 남편 대신
뒤치다꺼리할 영감 없는 인생이
가끔은 편하게 느껴져서,
혼자 웃게 될지도 모르지요.
전화 한 통 없는 아이들이 야속하기보다
세 아이들 뒷바라지로 바람 잘 날 없던 날들이
오히려 그리워지는 시간이 찾아올까요.
거동이라도 불편해 질 나치면,
ㅇㅇ요양원에 내 이름 적힌 물병하나 들고,
차려주는 밥 얻어먹으며,
왕년에 방귀 좀 뀌었다 하는 할매들과 동문서답하며 지낼 수 있을까요?
그땐 말하게 되겠지요.
집도, 차도 다 부질없더이다.
내 남편도, 내 자식도
결국 내 것이 아니었더이다.
이 세상에서
진짜 내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건
내 이름 적힌 물병 하나와
속옷 몇 벌뿐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