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한호랑이 Oct 07. 2021

[작사의 시대 9기] 낯선 단어들의 조합

10/6 무작위로 2개 단어카드를 뽑아서 문장을 만들어보세요.

코로나 확진자 접촉으로 3주 만에 만났다. 근황들을 물었는데 한 분이 퇴직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본인에게도 갑작스러운 변화라 이런저런 고민이 많아 보였다. 선생님이 같이 일해보자! 여기 할 일 많다!라고 의욕을 자극하는 말씀들을 해주셔서 또 그 이야기로 한동안 수다.


오늘은 낯선 단어 카드로 문장 조합하는 과제가 있었다. 무작위로 단어 카드를 2개 골라, 그 단어들로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내가 고른 카드는
 '사랑', '용기 난다'

사랑은 용기 나게 한다. 용기있는 자가 사랑을 얻는다 등의 긍정적이고 당연한 말보다 좀 비틀어서 생각해보고 싶었다. 사랑스럽지 못한 사랑, 용기 중에서도 내면 안 되는 용기랄까.


처음 생각해 본 내 글감은 내 첫사랑 내용이었다. 나는 내 입장에서 아주 나쁜 남자를 좋아해서 자존감에 상처를 많이 입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난 20대엔 이런 아픈 사랑을 해야해! 하면서 비련한 내 처지에 도취되어 있었던 것 같다. 


하루는 아빠가 내가 한 창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실에서 같이 심수봉 노래를 전축으로 들을 때, 평소 우리 아빠 답지 않은, 응? 갑자기? 왜? 스러운 말을 했다. 


"나는 네가 너무 좋은데 상대방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것, 그게 정말 괴로운 거지. 배신감도 느껴지고 비참함도 느끼겠지. 진짜 사람이 마음 때문에 사랑 때문에 스스로 죽을 수 있고 남도 죽일 수 있는 거야. 제일 괴로운거야.  "


그때, 헐 아빠도 알고 있나? 아 쪽팔려. 티나지 않게 조심해야겠다가 아니라, 아! 나 이렇게 괴로워서 죽어도, 엄마 아빠한테 어쩌면 이해받을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비극적인 사랑은 얼마나 미련하고 철없는지, 부모 앞에서 죽을 생각도 하게 하는 정신나간 용기도 나게 한다. 이걸 용기라고 해야할지...


 마음에 대해 미안함도 없는 너 때문에 엄마 아빠한테는 미안해서 그날까지 말도 한 번  꺼냈던  용기를 내봤다.

> 엄마 아빠, 미안해요. 나 계속 죽을 용기가 나요. 엄마 아빠 앞에서 미안한 것도, 무서운 것이 없다는 것이 이런건가봐. 


ㅋㅋㅋ 아이고 못 쓰겠다. 뭐야, 죽긴 왜 죽어. 딴 남자들이 월매나 많은데. 셰익스 페어 비극 여주야 뭐야. 이미 스무 살 때 저릿저릿하게 아팠던 첫사랑의 마음은 다 휘발되고 없어져 버려서 글로나마 그때 그 감정을 가져오려 해도 좀처럼 감정이입이 안된다. 왜저래! 20살의 나를 만나면 등짝이나 찰싹 후려쳐서 얼빠진 애 챙겨서 고깃국이나 뜨뜻하게 먹이고,  머리채 휘어 잡고 "야 좀 봐라 봐" 눈 앞에 지나가는 다른 멀쩡한 남자들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두 번째 써 본 글은 비교적 최근일 아들을 출산한 다음의 내 느낌이었다. 출산과 육아가 가장 요 근래 사랑과 죽을 용기에 대해 생각해본 사건이었다.


아이를 낳고 한동안  마음이 힘들었던 이유는,  내가  모양  꼴로, 멋지게는  살지라도 정 못살겠다면  스스로 끝낼 수도 있다는 선택권, ' 삶의 대한 결정권'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이제  때문에 마음대로 죽지도 못한다는 생각에 때때로 숨이 막히고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이게 자식에 대한 사랑인지, 요새는 곤하게 자고 있는 아들의 숨소리를 듣고 있을때면 ,  삶의 결정권 따위, 그깟게 뭐라고. 그 어떤 삶이라도 애를 위해서 살아있겠다는 용기가 난다.


탄생의 기쁨을 느끼자마자 이제 남은 건 죽음이다. 죽어도 아무렇지도 않겠다는 생각이 계속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자궁 있는 여자로서 나는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켜봤으니 내 동물적 소명은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리원 침대에 누워 있으면 눈물도 양 옆으로 떨어지고, 내 가슴에서 양 옆으로 흘렀다. 살아 뭐해...침대에 누워 캄캄한 천장을 보고 있으면 거북이가 해변에서 땅을 파 알을 낳고 어기적 어기적 바다로 돌아가 죽음을 맞는다는 옛날 옛적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또 연어가 힘겹게 상류로 올라와 알 낳고 지쳐 죽어 떠내려가던 그 동물의 세계 장면..이 떠올랐다. 임희원이란 동물은 이대로 가는 건가 하는 생각들.


배를 째든 회음부를 째든 어쨌든 그래도 낳는 건 쉬운 거였다. 죽음을 생각하는 그 생각도 사치였고, 조리원에서 쫒겨나와 집에서 애를 볼때는 죽음을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  밤을 꼴딱 새워 신생아를 케어하면서 드는 생각이.. 이런 망할 나는 이제 죽을 수도 없네! 빼박 이제 얘 때문에 살아있어야 하네! 하는 절망이었다.


그나마 여차저차 안되면 나만 간단히 죽으면 되지. 뭐 이 꼴 저 꼴 못 보겠고 정 내 삶이 회복 안될 만큼 구려지면 아쌀하게 죽어버림 된다! 는 생각이 그나마 내 삶의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그 마지막 보루 같은  '내 삶의 대한 결정권'마저 뺏긴 느낌이었다. 내 목숨마저,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네 하는 멘탈 나가는 절망.


근데 애기가 돌이 돼서 아장아장 걷고, 두 돌 되고 내 말 알아듣고,  이제 내 마음 녹이는 사랑 한다 엄마 예쁘다는 말도 곧잘 하는 세돌이 되니, 오메 내 귀한 새끼 두고 내가 어딜 가 오래오래 살아서 내 새끼 뒤 봐줘야지, 오메 불안해서 나는 먼저 눈을 못 감네, 뒷방 늙은이가 되서라도 나는 내 아들위해 기도하기 위해서라도 오래 살아야지.. 가 되어버렸다. 이젠 그 어떤 삶이라도,  죽는 게 나을 이생이라도 내 선택은 내 아들이 먼저다. 아들 때문에 내 마지막 보루를 걷어차고 아들을 위해 살 용기를 내본다.  


다른 분들이 뽑은 단어들도 재미있었다.


솔직/ 혼란스러움

잠/ 불편하다

놀이/ 막막하다


언제 여유로울 때 다른 분들 단어로도 연습해봐야겠다.

어제도 즐거웠다. 

내가 살고 죽고의 용기를 첫사랑, 또 자식에 대한 사랑에서 찾았다는 것이 스스로 로맨틱했다. 

남편은. 사랑과 용기 난다라는 단어에 어디에도 등장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나도 슬프고 그도 슬프겠다. 우리 의리로 잘 살자.













매거진의 이전글 [작사의 시대 9기] 그림 지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