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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Nov 03. 2022

<시작하며> 『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  & 그림책

『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 & 그림책


  심리학자 에릭슨은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중요한 건 생물/신체적인 요소보다 심리/사회적인 요소라고 했습니다. 에릭슨은 영아기부터 노년기까지의 전 생애를 여덟 단계로 구분했는데요, 각 단계별 이름은 성공해야 할 과제와 그 과제를 성공하지 못했을 때 부딪치는 심리적 위기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1단계는 '신뢰감 대 불신감'입니다. 태어나서 1년 동안 양육자가 아기의 욕구를 일관되게 만족시키느냐 아니냐에 따라 아기는 세상을 신뢰하거나 불신합니다. 에릭슨은 단계마다 있는 과제를 해결하면서 정체감을 형성한다고 봤지요.  

 

  에릭슨의 심리 사회적 발달 이론에 따르면 저는 7단계인 '생산성 대  침체성'에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시기이죠. 생산성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뿐만 아니라 직업에서 실적을 쌓고 성취감을 느끼면서 높일 수 있습니다. 봉사를 통해 얻을 수도 있고요. 7단계의 발달 과제는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타인과 교류하고, 사회에 공헌하며, 다음 세대를 이끌어가야 하는 요구와 욕구를 갖고 있지요. 생산성이 발휘되지 못하면 침체를 겪습니다. 자기중심적, 타인과의 불화, 공허, 지루함 등의 문제를 갖게 됩니다. 


  에릭슨은 각 단계마다 발달적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위기를 잘 극복했는지, 아닌지에 따라 긍정적인 성격과 부정적인 성격의 특성을 갖게 된다고 했지요. 그는 긍정과 부정을 모두 공유하면서 긍정적인 면이 부정적인 면보다 강하면 세상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봤습니다. 부정적인 면이 긍정적인 면보다 우세하면 그 단계와 관련된 정신적 문제를 겪는다고 했고요.  


  성공해야 할 과제를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7단계에 온 저는 삐그덕거리고 있습니다. 나이는 어른인데 정신은 과거 어느 시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좋은 어른이 되지는 못해도 손가락질받는 어른은 되지 말아야 하는데 자신이 없습니다. 마지막 8단계는 '자아통합 대 절망감'인데 이 상태로 가다가는 절망에 빠져 삶을 혐오하면서 죽음을 두려워할 것만 같더라고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어른이면서 추하지 않은 노년을 맞이하고 싶은데, 심하게 욕심을 부리자면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운 인간이고 싶은데 매 순간 미성숙한 저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보다 훨씬 미성숙하고 이기적이고 무서운 어른들을 보고 있지요.




어른들이 사라진 시대에서
어른으로 산다는 것
 

  『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은 순전히 제목 때문에 끌렸습니다. 제게 주어진 어른이라는 역할이 정말 농담인 것 같아 웃다가도 그 앞에 붙은 '진지한'이 저를 옴짝달싹 못 하게 했지요. 표지에 있는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품위를 지키는 27가지 방법"이라는 설명을 보면서 이 두꺼운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권위가 아니라 품위를 가진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어요. 책 한 권 읽는다고 될 일이 아닌데도 그때는 무엇에라도 기대고 싶었나 봐요. 


  그래 놓고 7개월 동안 이 책을 펼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다시 찾은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그들 때문입니다. 높은 지위에 있지만 품위와 품격은 없고, 인간에 대한 예의와 애정은 찾아볼 수 없으며, 책임지지 않기 위해 책임을 떠넘기는, 너무나 미성숙하고 이기적이고 경악스럽기까지 한 그들을 뉴스에서 보다가 이 책이 생각났습니다. '훌륭하고 좋은 어른'은 못 되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어른'은 되자고 다짐하다가 『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을 그림책과 함께 읽기로 했습니다. 기사의 27가지 덕목을 중심으로 철학, 기독교 사상, 문학, 심리학 등을 접목한 이 책을 통해 "권위가 아니라 품위를 가진 진짜 어른"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동시에 지금의 저를 점검하려 합니다. 그것부터 시작해야지요.  


  만약 이 책이 저와 너무 맞지 않는다면 이번 시도는 언제든 멈출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괜찮은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은 멈추지 않겠습니다. 



* 27가지 덕목 : 현명함, 유머, 열린 마음, 자족, 격식, 겸손, 충실, 정조, 동정심, 인내, 정의, 스포츠맨십, 권위, 데코룸, 친절, 인자함, 솔직함, 관후함, 절제, 신중함, 쿨함, 부지런함, 극기, 용기, 관용, 자부심, 감사함 



  죄로 가득한 엉망진창의 삶이 마지막에 면죄를 받는다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준에서 볼 때 허무맹랑한 일이다. 그런 너그러움은 그가 제시한 덕의 범위에서는 부적절한, 심하게 말하면 바보스러운 금단의 영역에 속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기사의 덕은 완벽함, 아름다움, 힘을 숭배하는 고대의 이상과 비뚤어지고 구부러진 것에 대한 기독교적 감수성, 자비, 이타주의를 지향하는 윤리를 하나로 아울렀다는 특징을 가진다. 그러므로 앞으로 개개인의 덕을 다룰 때마다 나는 거듭해서 기사들이 추구한 이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시대정신을 두고 한창 논쟁이 벌어지는 지금, 내게는 이것이야말로 이상적인 방법으로 비쳐진다. 

***

  독자들께서는 이 책에서 자신을 완벽한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법 따위를 찾지는 못할 것이다. 이 같은 완벽함을 규정하려는 시도만으로도 주제넘어 보인다고도 생각한다. 다만 완벽함에 이르려면 어떤 방향으로 눈길을 돌려야 할지를 생각해보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데 여러분도 동의하기를 바랄 뿐이다.
(중략)
  그러려면 먼저 깨달아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우리가 아직은 완벽함과 거리가 멀고, 우리의 성격, 태도, 존재가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갈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둘째, 우리는 흠 없는 완전무결한 상태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어딘가 우리 마음을 놓이게 한다. 어느 누가 완벽해질 수 있고 또 그러기를 바라겠는가. 오늘날 누군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로베스피에르 식의 엄격주의가 흉측한 머리를 쳐들 수 있는 것도 바로 완전무결을 외치는 바보 같은 요구 때문이다. 우리 중 누구도 도덕적으로 우월함을 느낄 이유가 없으며, 누구나 어느 정도는 '또라이 기질'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보다 건전하고 현실적인 사고방식일 것이다.


- 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 -




 * 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이상희 옮김, 추수밭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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