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조언을 가장해 비난과 악담을 뱉었다. 과장과 거짓을 진실인 듯 말했고, 위로라면서 상대를 비난했다. 자신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고 이성적이라 자평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타인을 평가하고 비판할 때만 그랬다. 스스로가 저지른 잘못이나, 자신의 부족한 점에 대해서는 감정적으로 대응하면서 숨기려 했다.
처음에는 그들을 향한 분노였다. 이 상처를 어떻게 돌려줄까, 했는데 그 비수를 내 심장에 꽂았다. 그들이 하는 개소리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나에게, 객관적이고 냉철한 척하는 허점에 반박하지 못했던 나에게,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다고만 한 나에게, 배설물 같은 헛소리가 나를 위한 조언이라고 착각했던 나에게 오랫동안 화가 났다. 자책은 자학으로 이어졌다. 심장에 비수를 꽂고 꽂으면서 상처가 덧나는 걸 바라봤다. 아파서 아프게 했다. 처음에는 그들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나였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잠깐 취미로 배운 게 전부다.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몰라서 내 멋대로 최대한 단순하게 그렸다. 주인공의 얼굴을 매번 똑같게 그릴 자신이 없어서 눈, 코, 입도 생략했다.
내가 원하는 이미지와 내 손끝에서 구체화되는 그림은 천지차이였다.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은 순간에도 그림을 그렸다. 내 속에 있는 상처를 어떻게든 드러내야 했기에, 더는 후벼 팔 수 없었기에, 나와 같은 아픔을 지닌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었기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이게 뭔가, 싶다가도 이렇게라도 했으니 됐다 싶었다. 그러다 뭐 이런 걸 만들었나 싶어 창피했고, 어떨 때에는 괜찮아 보였다.
재미로 본 사주풀이에서 나는 열정은 많은데 실행력은 꽝이란다. 동생 말로는 나무를 잘 가꾸고는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인간이란다. 뭔가를 만들어놓고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아 표현력이 없다고도 했다. 그래놓고 왜 안 알아주냐고 속상해한단다.
요즈음 나는 나를 '무욕'이라 칭하고 있다. '무기력한 욕망덩어리'의 줄임말이다. 욕망은 강한데 행동하지 않는 내가 싫어 또 다른 비수를 겨누고 있다. 더는 안 되겠다 싶다. 나의 '무욕'이 '무해한 욕구충족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가 처음으로 쓰고 그렸던 이야기 일부를 공개한다. 몸에 새겨진 아픈 말들이 긍정의 언어로 다시 새겨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상처의 기록이 아니라 회복을 증명하는 이야기였으면 한다.
"네 생각은 필요없어"라는 말을 들은 후부터 입술이 작아지는 노란빛의 주인공과 "무조건 들어"라는 말에 작은 소리까지 들리는 보라빛의 주인공. 이 둘이 상처를 회복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