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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대한민국에서 장교로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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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캡틴 Dec 09. 2018

월동준비

군대상식

어느새 날씨가 영하권으로 떨어지고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됐다.

며칠 전 곧 추워질 것이라는 생각에 인터넷으로 에어캡을 구매했다. 창문에 덕지덕지 붙으면 좀 지저분하기도 하고 밋밋해 보일 수도 있으니 체크무늬가 들어간 걸로. 주말에 배송받은 에어캡을 창문 사이즈에 맞게 제단하고 분무기로 물을 뿌려 창문에 붙이니 제법 그럴싸했다. 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체감하지 못 하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월요일에 점심시간에 회사 사람들이랑 밥을 먹다 주말에 뭐하고 지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뭐 다른 사람들의 주말이라고 특별한 건 없다. 누굴 만나서 무얼 하거나 그냥 쉬거나 그러는 정도. 그냥 인사치레 같은 이야기들이다. 그 와중에 누군가 나에게 주말에 뭐했냐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월동준비'했다고 답했다. 남자 직원들은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라고 웃었다. 분명 사회에서도 쓰는 단어지만 흔하게 쓰이는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난 매년 그 단어를 써왔고 어느새 입에 배어있다.

군에서 월동준비는 하나의 주요 임무이다. 겨울이 되고 장비나 물자가 저온에 노출되다 보면 성능 저하가 온다. 물자, 장비가 항상 제 기능을 발휘하게 관리하는 것이 전투력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임무수행능력 중 하나로 평가된다. 그래서 겨울이 되기 전 월동준비는 상급부대에서부터 관심을 가질 정도로 중요한 일이다. 군수과에서는 그 시기가 되면 월동준비 때문에 머리가 아파온다. 월동준비 계획 보고, 결과보고 등등할 것들이 많다. 검열이 나오기도 하기 때문에 허투루 준비할 수 없다.

기본적인 것들은 사회와 비슷하다. 겨울이 오면 눈 올 것을 대비해 창고에 있는 눈삽과 너까래를 쓸 수 있게 꺼내 놓는다. 또한 창문에 에어캡을 붙이기도 하고 난방기구를 꺼내 놓는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화재위험이 있어 인가되지 않은 난방기구는 사용하지 못한다. (숙소에서 전기장판을 쓰는 것도 제재 대상이다) 또한, 겨울옷을 꺼내듯 겨울용 근무복도 꺼내는데 온도 및 체감온도에 따라 착용하는 근무 복장이 다르다. (A형~D형까지 있다)

사진은 신나보이지만 휴식만큼 신나는 건 없다.

예전에는 겨울을 앞두고 김장을 하기도 했는데 군인 가족분들도 다 같이 와서 김장을 하고 나눠 갖기도 했다. 하지만 말이 김장이지 거의 강제 노역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요새는 김치를 다 보급을 받으니 그런 건 없어졌다.

가장 중요한 게 물자 및 장비관리인데 물자 같은 경우 저온에 노출되면 파손 우려가 있는 물자들은 외부 창고가 아닌 막사에 있는 창고로 옮긴다. 보통 화생방물자들이 이에 해당되는데 이런 물자들은 규정에 일정 온도 이상이 되는 장소에서 보관하라고 명시해두기 때문에 이를 어기면 불이익이 간다.

장비들도 보온대책을 강구하는데 유리로 되어 있는 부분들을 무언가로 감싸고, 군장비들은 내구성 때문에 쇠로 된 것들이 많아 손잡이 부분을 천으로 감싼다.

겨울이 되면 가장 애를 먹이는 게 기동장비들이다. 일반 승용차들도 겨울에 며칠 방치하면 방전되는 경우가 많은데 군대에서는 차량도 많은데 매일 쓰는 게 아니다 보니 방전될 우려가 있어 매일 시동 작업을 실시한다. 특히 자주포 같은 궤도장비들은 겨울에 성능 저하가 더욱 심한다. 까딱 잘못 관리해서 기동 하다가 멈추는 상황이 발생하면 몹시 피곤해진다. 아예 기동 자체를 못 하면 그나마 나은데 기동 하다가 멈추는 경우도 있어 조심해야 한다. 기동 하다 멈추면 그 커다란 궤도차량이 구난차가 끌어줄 때까지 도로 한가운데 멈춰있어야 한다.(게다가 군부대가 많은 지역은 왕복 2차선 도로가 많다) 상태가 심각해서 엔진 탈거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면 도로 갓길에 반나절 이상 멈춰 서서 정비작업을 해야 한다.(해도 금방 져서 플래시를 들고 해야 하는 상황도 온다) 그래서 온도에 따라 하루에 시동 작업을 하는 시간과 횟수가 정해져 있으며 너무 낮아지면 새벽에 일어나서 시동 작업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시동 작업하는 용사들도 피곤할뿐더러 궤도장비의 엔진 돌아가는 소리가 매우 커서 새벽에 시동 작업을 하다 보면 주변 민가에서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온다. 그렇다고 장비 관리상 안 할 수도 없다.

날이 추워지면 이래저래 피곤한 일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