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 작가의 소설집 『여름의 빌라』에 수록된 단편 소설 「흑설탕 캔디」를 읽으며 나의 감정은 먹먹함에서 울 것 같음으로 발전했고 마지막엔 끝끝내 울어버렸다. 「흑설탕 캔디」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일기장을 손녀가 발견하게 되고 그 이후로는 일기장에 적혀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할머니의 일상과 감정을 손녀의 언어로 서술해 나가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뼈대 중 뼈대만 이야기했다. 이 단편 소설은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로 압축되어지는 그런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처음 내 마음이 먹먹해진 건, 이야기 초중반쯤 나오는 문장 [시간이 갈수록 할머니 안의 고독은 눈처럼 소리 없이 쌓였다]를 읽고 할머니가 느꼈을 외로움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이때의 먹먹함은 소설 속 인물과 제삼자 관계인 독자의 입장에서 생긴 감정이다. 그냥 "저 할머니 외롭겠네." 하고 소설 속 인물에게 툭 던질 수 있을 만큼의 감정.
그런 관조적인 먹먹함을 품으며 읽어 내려가다가 내가 울 것 같은 기분이 든 건, 이야기 중후반쯤 나오는 어떤 문장을 마주했을 때였다. 그 문장을 읽고 나의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정확히는 내가 외할머니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어렸을 적 외할머니는 주기적으로 우리 집에 와서 몇 개월에서 일 년 정도를 머물다가 가곤 했다. 할머니는 부드러운 인상에 퉁퉁한 풍채로 신체의 선들이 다 둥그런 곡선이었다. 난 푸근함과 넉넉함이 느껴지는 할머니의 외견을 좋아했다. 외견만 좋아한 건 아니다. 할머니의 내면도 좋아했다. 할머니는 성격이 너그러웠다. 가끔 내 겨드랑이를 콕콕 찌르며 간지럼을 태워 내가 자지러지는 모습을 좋아하는 짓궂은 면모도 있었다. 할머니는 일본어를 몇 마디 할 줄 알았다. 나는 심심하면 할머니에게 가서 일본말을 해달라고 졸랐다. 고작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정도였지만 외국어를 할 줄 아는 할머니가 대단해 보였다.
할머니는 항상 거실 소파의 맨 왼쪽에 앉아있었다. 그곳이 암묵적인 할머니의 자리여서 우리 가족 중 아무도 그곳엔 앉지 않았다. 내 자리는 할머니의 옆이었다. 내가 할머니 옆에 달라붙어 있던 건 할머니가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실제 목적은 할머니의 어깨부터 팔꿈치까지 축 처진 팔 살을 만지기 위해서였다. 할머니의 통통한 볼, 통통한 배와 달리 팔은 살이 별로 없었다. 그저 얄팍하고 자글자글 주름진 축 처진 살이었다. 난 그 살을 조물조물하길 좋아했다. 아니, 좋아함을 넘어 집착적이었다. 할머니의 축 처지고 얇은 팔 살을 조몰락거리면 마음에 안정감이 들었다. 그 안정감의 크기는 정말 거대했는데, 그건 오로지 할머니의 팔 살을 만질 때만 느낄 수 있었다.
어린 나는 할머니의 축 처진 팔 살이 할머니의 신체 일부처럼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가 어쩔 수 없이 달고 다니는 생명이 없는 어떤 주머니처럼 느껴졌다. 할머니는 다른 또래 할머니들보다 활력 넘치고 볼살도 탱탱했는데, 유독 팔 살만 무기력하게 내려와 있었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생각을 품고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난 할머니의 팔 살을 조몰락거릴 때마다 할머니에게 '죽은 살! 죽은 살!'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처음 들은 할머니는 떽! 예끼! 하며 나를 무섭지 않게 혼냈다. 혼난다는 기분이 들지 않으니 나는 그 뒤로도 할머니의 팔 살을 조물거릴 때마다 죽은 살 죽은 살 거렸고, 할머니도 나중에는 죽은 살 거리는 내 말에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를 울 것 같이 만든 「흑설탕 캔디」 속 문장은 [아직 새파랗게 젊던 시절에 할머니는 늙는다는 게 몸과 마음이 같은 속도로 퇴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하지만 할머니는 이제 알았다. 퇴화하는 것은 육체뿐이라는 사실을]이었다. 이 문장을 읽고 속이 울렁거리며 뜨거워진 나는 책을 덮고 나의 외할머니의 마음을 가늠해봤다.
어렸던 내가 할머니의 팔 살을 만지며 죽은 살 죽은 살 거리던 그 시절, 할머니도 마음은 여전히 젊었을 적 마음과 같았겠지. 그런 할머니는 자신의 살을 보고 죽었다고 말하는 어린 손녀에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처음에는 화가 나서 손녀를 혼냈겠지. 그렇지만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죽은 살'거리는 손녀에게 아무 말이 없어졌던 건, 할머니 자신도 그 말을 자포자기하듯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을까. 마음은 여전히 젊은데 몸은 늙어서 죽어간다는 그 괴리를 어떻게 감내하셨을까.
할머니의 팔을 보고 죽은 살이라고 말하던 내가 죽일 듯이 미웠다. 미친 듯이 후회스러웠다. 자신에 대한 분노가 참을 수 없이 차올랐을 때, 울음이 빵 터져버렸다. 할머니 죄송해요. 죄송해요. 너무 죄송해요. 같이 사는 언니들이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중얼대며 한참을 울었다.
할머니는 이제 세상에 없기에 용서를 해줄 수 없지만 나는 계속 용서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