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업무 시작 40분 전 일터에 도착한다. 일터에 도착하면 사무실 불을 켜고, 창문을 열고, 물을 끓인다. 물이 끓는 동안, 행정실 공용 노트북 전원을 켜고, 공기청정기를 켜고, 내 컴퓨터를 켠다. 환기되었다 생각이 들면 창문을 닫고, 요즘같이 추운 날에는 난방을 켠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 바탕화면‘me’라는 폴더를 열어, ‘일기장’이라는 한글 파일을 열고, 쓰이는 대로 글자를 쓴다. 전날 몸에 쌓인 것들이 흰 도화지에 글자로 뱉어진다. 단어 몇 개일 때도 있고 문단 몇 개일 때도 있다. 10~20분 정도 글자든 글이든 막 쓰다 보면, 끓은 물이 적당히 식어있다. 커피를 내릴 타이밍이다.
탕비실 찬장을 열어 과테말라, 브라질, 에티오피아, 케냐 등. 가본 적 없지만 친숙한 원두 생산지 중, 한 군데의 원두를 선택한다. 원두가 담긴 봉지 지퍼를 열면, 깊고 긴 원두의 향이 두 뺨을 감싼다. 눈을 감고 그 감촉에 취해본다.
전동 그라인더에 4인분의 원두를 간다. 곱게 갈린 원두를 거름종이 씌운 드리퍼에 옮겨 담은 뒤, 끓은 물을 천천히 붓는다. 드립커피 내리는 법을 배운 적 없지만, 지난 2년 반 아침마다 드립커피를 내리다 보니 물 온도, 물을 드리퍼에 붓는 속도, 원두 양에 따라 부어야 하는 물의 양이 어떠해야 커피 맛이 좋은지 감이 온다. 계량하거나 수치로 정확하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내 몸이 알고 있는 요령이다.
반복적으로 시도하고, 결과를 확인하고, 느끼고, 깨닫고. 그러면서 몸이 스스로 터득하는 ‘감’이라는 것은 꼭 몸에 리듬이 새겨지는 것 같다. 이런 류의 리듬감이 충만한 몸에서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스스로를 신뢰하고 있다는 느낌. 자기 삶을 주도하여 살 것 같은 느낌.
삶 연차가 쌓일수록, 어떤 것이 되었든 경험들이 반복되니 당연히 감이라는 것도 늘어나겠지? 하지만 내가 본 나는, 삶 연차에 비해 감이 없는 편이다. ‘생각’은 주야장천 해댔지만, ‘생각’을 몸으로 시도하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계획, 가장 근사한 미래, 공감을 자아내는 생각, 영감 어린 생각. 생각. 생각... 생각에만 치중하다 보니, 생각은 날이 갈수록 정교하고 섬세해졌다. 하지만.
생각에 애정을 쏟을수록, 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줄어들었다. 몸은 가만히 앉아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몸이 무엇을 잘하는지를 잊어갔다. 애정 받지 못하는 몸은 윤기 없이 마르고 물기 없이 굳어갔다. 리듬 같은 건, 새겨질 수 없는 돌덩이처럼. 거기다가, 몸의 기력도 약해지고 있었다.
연필심이 날카로워질수록 연필 몸은 갈려 나갈 수밖에 없듯, 생각이 섬세하고 날카로워질수록 몸이 갈려 나가고 있었다. 생각을 놓치면 안 된다는 긴장감과 생각을 기르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조급함은 숙면도, 소화도 더디게 했다. 한 15년쯤... 잘 못 자고, 잘 못 먹었던 것 같다. 몸은 서서히 건강을 잃어갔다.
생각만 하고, 몸은 움직이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깨닫게 된 데는, 얼마 전 대상포진을 심하게 앓은 덕이다 왜 이렇게 내 몸이 안 좋아졌을까 살아온 지난날을 차근차근 되짚어 봤기 때문이다.
곧 출근할 선배와 동료의 커피 몫을 남기고 늘 마시던 만큼 머그컵에 담아 자리에 앉았다. 커피를 꿀꺽 하고 목 뒤로 넘기자 맛과 향이 리듬을 타고 몸을 감싼다. 2년 반 동안, 루틴에 따라 매일 반복해 내리며 내 몸이 터득한 드립커피의 맛과 향을 음미하며. 이제부터는 생각은 덜 하고, 몸을 더 쓰는 삶을 살자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