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K이상 안 달려본 나, 무작정 하프 마라톤 참가하다

역시 21km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by Jannsu

작년부터 러닝을 시작했지만 솔직히 그렇게 꾸준하게 한 건 아니었다.

그저 뛰고 싶을 때 3km, 5km 많이 뛰면 7km 정도 뛰었다.


1년 동안 10km 마라톤은 3번 나갔다.

첫 번째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뛰어서 걷다 뛰다, 또 걷다 뛰다의 반복이었다.

기록은 1시간 20분쯤.


그다음은 1시간 10분, 또 그다음은 1시간 6분이었다.

드라마틱한 변화를 준 것도 아닌, 10K도 잘 뛰는 것이 아닌 상태에서

“그래도 몇 번 뛴 경험이 있다”라는 사실만으로...


이번 연도 초, 5월에 하는 서울신문하프마라톤을 덜컥 신청했다.




하프 마라톤은 풀 마라톤에 정확히 반인 21.0975km를 달리는 마라톤이다.
10km에 2배를 달리고 무려 1km를 넘게 더 달려야 한다.


10km 마라톤 때도 7~8km 때 위기가 와서 축 쳐졌던 나는

이게 만만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실감은 안 났다.


신청을 하고도 딱히 길게 뛰는 훈련을 하진 않았고 그냥 평소대로만 달렸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지내다 보니 벌써 대회 전날이었다.

(사실 10km 처음 달릴 때도 이랬다)


전 날 비가 와서 그런지 대회 당일 아침엔 안개가 자욱하게 꼈다.

꼭 나의 미래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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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니 날은 완전히 개어서 따가운 햇빛과 더운 날씨가 마라토너들을 반겨주었다.

솔직히 뛰기에는 흐린 날이 더 좋긴 해서 아쉬웠다.

모두들 멋진 스포츠 선글라스를 끼고 오셔서 나도 살 걸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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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하프 마라톤 코스는 월드컵경기장 평화의 공원에서 출발해 구룡사거리를 거쳐 가양대교를 건너고,

그 이후엔 난지 한강 공원으로 진입해 시작점까지 주욱 뛰는 코스였다.


가양대교를 건널 때까지는 괜찮았다.

마라톤의 좋은 점은 항상 차로 다니는 길을 시원하게 내 발로 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대교를 건널 때 그 해방감이 배로 느껴져 힘듦이 살짝 잊힌다.


또한 가양대교까지 가는 길은 내리막길이 많아서 덜 힘들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싶은 여유도 잠깐,

가양대교에서 반환해서 돌아오는 길이 살짝 오르막이었는데, 이때부터 조금 힘들었다.


페이스가 6분대에서 7분대로 점점 떨어졌다. 그래도 중간중간 급수도 하면서 어느 정도 나아갈 수 있었고,

10km 지점에서 이전 기록인 1시간 6분 정도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10km를 넘기고 나서부턴 내 몸이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무너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릎과 발목에 무리가 확 가기 시작했다. 내 몸이 나한테 항의하는 것 같았다.

'10km 이상 달린 적 없었잖아! 왜 이러는 거야?!'


솔직히 그렇게 빠르게 뛴 건 아니라서 숨이 가빠지진 않았다.

문제는 다리가 아직 이 거리를 받아낼 힘이 없었다.


결국 13km 지나서는 걸었다 뛰었다를 반복했다.

뛰는 속도도 급격히 느려지며 페이스가 8분, 9분대로 계속 떨어졌다.


같이 뛰는 사람들도 나랑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이미 잘 뛰는 사람들은 앞서 나갔을 테니)

헛구역질을 하는 사람, 주저앉은 사람, 다리를 붙잡고 걷는 사람.
중간중간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까지 들려왔다.

나도 포기하고 싶었지만 호송당하는 건 너무 싫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그냥 도착 지점까지의 거리를 머릿속으로 나누고 다시 뛰고, 걷고, 또 뛰었다.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는 게 느껴졌고, 쥐가 날 것만 같았다.

10km 마라톤때도 그랬듯이, 정말 1km 남긴 지점이 가장 힘들고 포기하고 싶다.

정말 마지막에는 소리를 지르면서 달렸고

결국, 완주했다.



대회에서 정한 2시간 30분 리미트는 훌쩍 넘겼지만

이번엔 기록보다 완주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기로 했다.


훈련도 없이 무작정 달린 건 역시 무모했다.
하지만 덕분에 지금 내 몸이 어디까지 가능하고

어디서 무너지는지를 정확히 알게 됐다.


어떤 사람은 완벽하게 준비를 마치고
좋은 기록을 내는 걸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지 않더라도

단 한번 해보는 쪽을 택한 것이고, 이 선택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심지어 랭킹을 보고 꼴찌는 면했다는 자기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ㅋㅋㅋㅋ)

신기하게 이번 대회에선 5000명 전체 참가자 중에 여자가 800명 밖에 참가하지 않았다.

어쩐지 뛰는데 여자가 많이 안 보였다...


다음번엔 좀 더 준비된 마음과 몸으로
조금 덜 무모하게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근데 하프도 이렇게 힘든데 풀 마라톤은 어떻게 뛰는 걸까...

시간과 상관없이 그 긴 거리를 뛰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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