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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May 28. 2020

낚싯꾼

막시밀리안 루스




   두 사내가 손바닥 만한 연못가에 술에 취해 뒹굴었다. 갓 피어나는 연의 연약한 줄기를 낚시 도구로 뚝뚝 잘라내 고선 낚싯대를 드리웠다. 세월을 낚긴커녕 술에 취해 휘청휘청했다. 한 사내는 기어코 벚나무 그늘에 널브러졌다. 나무 그늘은 점점 두터워졌다. 그늘 아래 세워둔 차에는 온갖 살림도구가 실려 있다. 길가나 저수지에서 이러고 다니는 게 한두 번이 아닌 살림도구들이다. 작은 버너에 냄비 술병 김치통 라면 젓가락 생수에 소주병들. 아이도 부인의 동행도 없이 두 사내는 하루 종일 마시고 깨고 낚싯대를 드리웠다 거두었다 미끼를 던졌다 했다. 해가 창창하고 기울기가 생기고 나무의 그늘이 이동했다. 연의 키우는 저수지는 숱한 낚시꾼들이 들락거린 탓에 망신창이가 된지도 오래되었다, 온갖 쓰레기 담배꽁초 침 음식물 찌꺼기 소변.... 그래도 무연히 연의 잎이 펴고 여린 가지가 물속에서 비죽이 올랐다. 새삼스럽다 세상이여. 이 연잎들 때문에 세상이 새삼스럽다. 백수들이여. 깨어나서 보라, 그대들 생이 새삼스러울 일 없을 때 보라. 연잎이 연잎이 하나하나 새삼스럽게 피어나는 걸. 적갈색 줄기들이 겨울을 이겨내고 나서 연초록의 줄기와 잎을 피워내는 작은 연못의 새삼스러움에 마음이여 한 갈피라도 흔들려보려나. 휘청거리지 말고 올곧지 말고 다만 한 갈피의 흔들림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 헤벌려진 입 안 가득 봄을 만끽할 수 있는 반향은 없다. 낮 꿈이라도 꾸고 일어나 또 한 잔이면 보이려나! 잠든 동안 한층 새삼스러워진 연초록이, 낯 부끄러운 얼굴을 가려주는 연초록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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