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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장애 II (Indecision II)

휴이 리-스미스 (Hughie Lee-Smith, 1915-1999)

by 일뤼미나시옹

Hughie Lee-Smith - Indecision II [c.1980s]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이 콘크리트의 날카로운 선 위에. 선은 시작인가 끝인가, 나는 묻지 않는다. 다만 선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 위에 서 있다는 것. 그것이 모든 것이다. 지금.

너를 돌아본다. 아니, 너는 없다. 나는 다만 내 과거의 잔상일 뿐인 허공을 돌아본다. 시선이 닿는 곳에 네가 있는가? 내 시선이 너를 창조하는가? 이 뻣뻣한 고개의 각도, 이 순간의 정지가 나의 유일한 생(生)이다. 등 뒤의 세상과 등 앞의 세상, 그 사이에 낀 살점, 하나의 떨림, 그것이 나다.

구명조끼가 무겁다. 삶을 위한 것인데 죽음의 무게가 느껴진다. 이것은 약속인가, 아니면 이미 집행된 판결인가. 물은 말이 없다. 물은 그저 물일 뿐, 심연이거나 길이 되는 것은 오직 나의 문제다. 저기 저 섬, 저 붉은 건물. 저곳은 구원인가, 아니면 또 다른 나인가. 나는 알지 못한다. 알지 않는 것이 나의 유일한 앎이다.

그리고 저것. 바닥의 저것. 저 원. 누가 그려놓았는가. 신의 눈동자인가, 아니면 그저 무(無)의 중심인가. 과녁. 나는 과녁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가, 아니면 나 자신이 화살이 되어 저곳에 꽂혀야 하는가. 이 질문은 너무나 끈적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본다.

모든 것이 너무나 명료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늘은 텅 비어 있고, 그래서 모든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침묵은 비명이 터져 나오기 직전의 순간처럼 팽팽하다.

나는 선택하지 않는다. 선택은 시간을 전제로 하지만, 나에게는 오직 이 정지된 순간-지금만이 있을 뿐이다. 몸을 돌릴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나는 이 망설임의 상태 그 자체로 살아있다. 어쩌면 이것이 나의 유일한 선택일지도. 이대로 영원이 되는 것.





선(線) 위의 남자, 우리 앞의 망설임


한 남자가 우리를 돌아봅니다. 그의 시선에는 질문과 망설임, 그리고 미처 다 건네지 못한 이야기의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멎은 듯한 텅 빈 부두, 그 위로 가라앉은 서늘한 공기, 그리고 남자의 어깨를 감싼 팽팽한 긴장감. 우리는 이 불가해한 정적 속으로 초대된 유일한 관객입니다.

이 정지된 순간의 주인은 20세기 미국의 화가 휴이 리-스미스(Hughie Lee-Smith)입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 겪었던 소외와 실존적 고뇌를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녹여낸 그는, 현실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어딘가 꿈속 같은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가로 불립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제목은 「결정장애 II (Indecision II)」. 제목을 알고 나면, 그림 속 모든 요소들이 왜 그토록 수수께끼처럼 느껴졌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됩니다.

그림은 온통 경계선 위에 서 있습니다. 남자는 단단한 땅의 끝과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의 시작점 사이에 서 있고, 등 뒤의 우리(아마도 과거)와 등 앞의 황량한 섬(미래)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그의 몸을 감싼 구명조끼는 곧 물을 건너야 할지 모른다는 암시를 주지만, 그의 발은 땅에 단단히 붙박여 한 걸음도 떼지 못합니다. 떠날 준비는 되어 있으나 떠나지 못하는, 머무르고 있으나 온전히 머무르지 못하는 이 역설적인 상태가 바로 ‘결정장애’, 즉 망설임의 본질일 것입니다.

화가는 여기에 가장 기이한 상징 하나를 발밑에 그려 넣었습니다. 바로 ‘과녁’입니다. 누가 그려놓은 것일까요? 남자는 지금 어떤 시험대 위에 서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보이지 않는 세상의 표적이 된 것일까요? 이 과녁 하나로 그의 고뇌는 단순한 개인의 망설임을 넘어, 거대한 운명 앞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야 하는 보편적인 인간의 실존적 고민으로 확장됩니다.

결국 이 그림은 풍경화의 모습을 한 한 인간의 깊은 내면, 즉 **‘심리적 풍경화’**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경계선 위에 섭니다. 과거의 익숙함과 미래의 불확실성 사이에서, 안주하고픈 마음과 도전해야 하는 의무 사이에서, 그림 속 남자처럼 뒤를 돌아보며 걸음을 멈추곤 합니다. 그의 망설임은 곧 우리의 망설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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