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바람 붉은 광야에서의 전생아, 무명 저고리 흙바람에 젖어 붉어지고, 흙손에 흙발의 광야를 걷던 전생아, 나날의 생을 광야 끝 희부윰한 시야를 펼쳐놓고 과녁도 없는 곳으로 침묵의 화살을 날렸던 전생아, 입술에서 흙바람 소리가 스쳐 음이 들리고, 백태 낀 시선 속으로 새가 날아가는 헛것을 얼마나 자주 보았던가. 어느 날은 모래땅에 찍어놓은 발자국이 거북이처럼 기어가고, 보행과 침묵의 날들 속에서 발자국은 왜 모두 너와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가버렸는지. 흙바람 불어 날마다 노을이 선홍빛일 때마다 백태 낀 약시의 허공에는 꽃이 또 얼마나 많이 피었으며, 새소리는 또 얼마나 애잔했던가. 그 모든 것이 허상이고 헛것이었다 해도, 나는 좋았다. 전생아. 가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붉은 새'를 만나는 헛것이 나는 참 좋았다 전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