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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Dec 05. 2015

아그네스 마틴 - 붉은 새



 흙바람 붉은 광야에서의 전생아, 무명 저고리 흙바람에 젖어 붉어지고, 흙손에 흙발의 광야를 걷던 전생아, 나날의 생을 광야  희부윰한 시야를 펼쳐놓고 과녁도 없는 곳으로 침묵의 화살을 날렸던 전생아, 입술에서 흙바람 소리가 스쳐 음이 들리고, 백태 낀 시선 속으로 새가 날아가는 헛것을 얼마나 자주 보았던가. 어느 날은 모래땅에 찍어놓은 발자국이 거북이처럼 기어가고, 보행과 침묵의 날들 속에서 발자국은 왜 모두 너와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가버렸는지. 흙바람 불어 날마다 노을이 선홍빛일 때마다 백태 낀 약시의 허공에는 꽃이 또 얼마나 많이 피었으며, 새소리는 또 얼마나 애잔했던가. 그 모든 것이 허상이고 헛것이었다 해도, 나는 좋았다. 전생아. 가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붉은 새'를 만나는 헛것이 나는 참 좋았다 전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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