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병원 응급실. 하루에도 몇 명씩 머리가 깨진 사람이 찾아온다. 고양이한테 물리고, 자동차 파편이 얼굴에 박히고 다리가 잘린 사람이 실려온다. 식당일 하다 칼에 손이 베이고, 단풍이 한창인 날 목매 자살한 시신이 구급차에 실려오고 한참 후 기생오라비 같이 생겨 먹은 아들놈이 와서 린넨 천으로 가려진 아버지 얼굴 한번 들춰보지도 않았다. 또 어느 새벽엔 이불에 똥오줌 지리고 죽은 할아버지를 며느리와 손녀딸이 동행했는데 백옥 같은 얼굴에 사슴 눈망울의 손녀딸이 응급실 입구에서 저만치 있는 할아버지 주검을 멀거니 바라보며 죽음의 세계로 할아버지를 배웅할 때 망자의 흰발이 부처님의 발처럼 이불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것뿐이었나. 불덩이의 어린 아들을 업은 엄마가 어둡살을 뚫고 와서 병원 앞에서 고꾸라진다. 무슨 말을 하려 해도 입에서 헛말이 터져 나오더니 한 시간 후 애엄마는 병원 응급실이 어떠니 저 떠니 열을 내고 애 손잡고 걸어 나갔다. 또 어느 날은 의식불명의 아들의 다리를 주무르는 사색이 된 농부의 두꺼비 같은 손이 아들의 무의식을 더듬을 때, 무어라 말할 수 없어서 무어라 소리치고 싶어서, 그 괴로움과 고통의 표현을 두꺼비처럼 느리고 무겁게 아들의 발을 주무를 때. 어느 날은 의식불명의 환자에게 전기충격을 주고 흉부압박을 하느라 온 체중을 다해 이마에 땀이 맺힌, 퇴근시간 마저 늦어버린 간호사 그만 손 놓고 병원 밖에서 담배 피우며 자판기 커피 마실 때. 어떤 날 새벽 출근길에서 쓰러진 가장을 보고 혼절해버리는 딸과 가족들의 망연해하는 눈빛. 그런가 하면 대갈빡에 피도 안 마른 학생 놈들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병원 근처에서 술에 담배에 고성방가의 나날들. 그런 날들 속 어느 날은 병원 건물에 가려 햇빛도 못 보는 비쩍 마른 측백나무 아래 혼자서 검은 비닐봉지에 캔 맥주랑 스낵 펼쳐놓고 상한 계란 같은 달 바라보며 혼자서 담배 빨고 술 마시던 생머리 아가씨의 침묵. 그러는 사이 주검은 또 119 구급차에 실려오고, 장례식장 직원은 주검이 오면 얼른 전화해달라 하고, 무심하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무심해지는 간호사들의 밤샌 눈 앞에 칼이랑 망치 들고 내연녀가 누워 있는 응급실에 들어와 병원을 발칵 뒤집어 놓은 밤. 결국 경찰에 발이 꺾여 끌려가고 이 사실을 모르는 아들이 택시 타고 찾아와 누웠는 엄마 얼굴 앞에서의 진흙빛 얼굴. "아이고 아파라, 아파 죽겠다. 아이고 아파 죽겠다."며 할머니가 지팡이를 따각따각 병원 바닥을 짚어도 자꾸만 미끌거리는 지팡이를 버들버들 떨리는 손으로 지탱하며 부여잡으며 의지하며 느리고 더디게 걸을 때, 옆에서 반응 없는 며느리 혹은 딸의 부루퉁한 얼굴과 어깨에 걸러 맨 명품 짝퉁 가방의 번들거림. 그런 와중에 나는 손바닥 라디오를 89.7에 맞춰놓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무연히 듣고 들었다. 그런 나날들의 연속 속에서 어느 엄동의 심야. 환자라곤 독감 환자 몇이 링거 꽂고 잠들어 있는 참 조용한 새벽, 의사도 간호사도 야식에 식곤증에 축 늘어져 버린 새벽. 갑자가 내 두 손이 내 얼굴을 감싸 버리는 것이었다. 약하게 켜놓은 라디오에서 연주가도 곡명도 알 수 없는 피아노 소나타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긴 연주의 어느 한 부분에서 그만 나는 세상 아무도 모르게 손에 얼굴을 묻고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에게 무언가 질문을 했고 질문에 상관없는 답변 같은 것을 들었다. 그 질문은 그 답변은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묻고 되고 듣게 된다.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