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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vinstyle Mar 04. 2024

매출마감 없는 세상 살기

회사문화 답사기 16(이직시리즈 2)

89년 가을,


첫 번째 이직을 성공한 후 10년이 흘렀다.


「인재제일」의 사훈 아래 「프랑크푸르트 신경영선언」으로 도약한 삼성전자에서 B2B영업의 모든 형태의 세일즈를 경험하고 크고 작은 성과를 창출하였다.


복사기 세일즈에서 휴대폰으로, 컴퓨터로 세일즈 상품도 진화하였고 그룹 관계사영업에서 유통 대리점영업을 거쳐 교육기관과 공공기업 직판영업에 백화점, 양판점 영업까지 아우르는 영업리더로 자리 잡았다.


교육업무에 관심과 흥미가 있어서 그룹 사내강사 과정을 이수하고 대리 시절부터 신입사원과 대리점 영업사원 세일즈교육 강사로 활동하였다.


B2B세일즈의 기본 프로세스와 고객발굴과 상담 및 협상과정이 주 강의 콘텐츠였다.


세일즈 현장의 경험을 더하여 체계적인 세일즈 프로세스를 강의를 통해 전달하는 것은 신나고 가치 있는 소중한 활동이었다.


과장 초기에는 그룹 연수원 주도의 세일즈교육과정개발 프로젝트의 한 멤버로 참여하여 3개월간 「신임과장 영업교육 과정」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였다.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던 나에게 그룹 교육 과정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하여 감사했고 완료 후 성취의 보람도 컸다.


B2B세일즈 성과는 교육시장을 대상으로 한 세일즈에서 탁월한 성과를 기록했다. 95년 교단선진화 프로젝트로 94%의 M/S 를 기록하며 한 번의 프로젝트에 5500대의 컴퓨터를 판매했던 성과는 다시는 기록할 수 없는 나의 세일즈 최대성과였다.


지역 내 경쟁사 직원들 나는 모르지만, 그들은 내 이름 석 자는 알 정도로 본의 아닌 유명세를 치렀다. 이후 지역 내 컴퓨터 B2B세일즈를 하는 경쟁사 리더들을 한 자리에 모아 가칭 '세일즈 협의회'를 운영하면서 저가경쟁, 무리한 사은품 끼워주기 경쟁 등을 자제하는 자정노력도 기울였다.


삼성전자 과장으로 세일즈의 경험과 성과를 탄탄히 쌓은 그 해, 연말 인사고과에서 B를 받았다. 고성과자였기에 내심 S, 최소한 A를 기대했었기에 마음이 불편했다. 당시 진급을 앞두고 있던 선배 고참 과장이 S를 받았고 지사에서 S가 나오면 A를 줄 수 없는  평가구조여서 어쩔 수 없었다.


「인재제일」이 반드시 고성과자를 의미하는 것만이 아님을 느꼈고, 마음 한 구석에서는 「진골」이 아니기에 받는 서러운 감정이 올라왔었다.


대기업도 인사평가는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성향이어서 불이익을 받는 거라고 마음을 정리하고, 세일즈를 통해 친숙해진 고객과 세일즈 성과로 안위하고 팀원들과 결속을 다지며 더욱 세일즈에 매진했다.


97년 무렵부터 B2B세일즈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올라왔다. 사실 직판영업은 매 월 매출목표를 달성해야 하고, 「숫자가 곧 인격」이므로 매출실적이 부족한 달은 회의에 들어가기 주담스럽고 힘들었다. 유통영업이 아닌 직판영업은 더욱더 「수요예측」과 「수주전망」의 불확실성이 크다 보니 일 년 내내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하루종일 세일즈 관련 생각과 활동에 집중해야 했다.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의 「시지프스의 돌 굴려 올리기」 형벌처럼 멈추지 않고 세일즈기회발굴과 상담과 협상프로세스를 굴려 올려야 했다.

매출마감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나의 원함은 영업기획팀으로 전배를 받아 마케팅을 하고 싶었다. 그동안 현장 세일즈를 통해 충분히 시장과 고객을 이해하고 있고 실전 세일즈 경험을 통해서 영업전략을 수립할 역량도 있다고 자신했다. 지사장님께 기회 있을 때마다 부서 전배를 부탁드렸다. 기회는 오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매출손익을 신장시키기 위해 지점에서 직접 매입한 HDD 업체가 부도가 나면서 송사에 휘말렸다.


외상미지급금에 대한 제삼자 채권압류가 들어왔기에 회사에서는 현장 책임자인 나에게 해결하라는 오더가 떨어졌다. HDD업체 대표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고 사업이 망한 본인 걱정보다 대기업 과장이기에 내가 다칠 수 있다면서 반드시 채권압류 해결하겠다고 약속해 주시고 한 달 뒤에 깔끔하게 정리해 주셨다. 세일즈 현장에서 만난 존경하는 인생 선배님 중 한 분이었다.


첫 직장에서 알고 지내던 지인이 세일즈 회사를 운영하였고, 협회를 상대로 한 단체 세일즈 건으로 계약서를 내밀고 가져간 팩시밀리 30대가 덤핑시장에 흘러나오는 사고도 발생했다.


처음부터 계약서는 조작이었고, 현금흐름이 깨어진 상태에서 나에게 매출을 가장하여 제품을 출고받아 자금회전에 사용했던 사건이었다. 결국 회사 법무팀에서 형사 사건으로 고소되었고 대표는 실형을 받았다.


무리한 매출욕심으로 지인도 잃고 명예도 잃었다.


나는 부실채권 발생으로 인해 경위서와 함께 그 해 인사고과는 완전히 망쳐 버렸다.


삼성전자에서 계속 세일즈를 한다면 계속 B2B직판영업전문가로 성장은 하겠으나, 40대 부장이 되어서도 여전히 장학사님, 선생님, 지자체 팀장님, 주사님들과의 네트워크만 유지하고 매월 매출마감에 시달리다 어느 날 퇴직을 당하겠구나 하는 우려로 마음이 허전했다.


사람이 인생여정을 바꾼다!


친한 후배가 경쟁사 삼보컴퓨터 과장이었다. 긴밀히 만나서 회사 분위기 파악과 마케팅 포지션 업무로 이직 가능성에 대해서 논의해 보았다.


당시 삼보컴퓨터 입장에서는 지역 내 M/S 를 회복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고 후배는 나의 성향과 성과를 잘 알고 있었기에 당시 삼보컴퓨터 대표이사와 단독 인터뷰 일정을 주선해 주었다.


HP세일즈 임원출신으로 삼보컴퓨터 경영 CEO이셨던 김두수 사장님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이직을 원하는 이유와 지역상권 내 시장규모와 프로젝트 현황을 비롯하여 몇 가지 세일즈 이슈와 관련한 질의응답을 가졌다.


일주일 후 이직에 대해 승인이 났다.

희망하는 마케팅업무는 지역에서 일 년만 지사장으로 세일즈를 해서 M/S를 좀 올려주고 이후 본사 마케팅팀으로 부르겠다는 대표이사의 약속이 있었다.


10년간 나를 키워준 고마운 삼성전자에 조금은 미안한 마음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한 달간 휴식을 가진 후 삼보컴퓨터 지사장으로 출근했다.


이 두 번째 이직이 차후 열다섯 번째 이직까지 이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삼보컴퓨터에서 참 신나게 세일즈를 다시 시작했다. 어제의 삼성전자 고객을 오늘의 삼보컴퓨터 고객으로 전환시키면서 고객께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선생님. 저를 선택하시겠습니까? 브랜드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주요 고객님들은 한결같이 나를 선택해 주셨다. 덕분에 일 년 만에 5%의 M/S를 35%까지 올리는 것까지 성공하고 일 년 뒤에 삼보컴퓨터 본사 마케팅커뮤니케이팀장으로 이동했다.


드디어 매출마감 없는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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