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uffyeon Aug 14. 2022

긴긴밤


이번 제주 여행에서는 어떤 만남도 없었다. 나는 혼자 걸었고 혼자 생각했고 혼자 바다를 보면서 어김없이 무언가를 생각해 내기 바빴다. 신이 나면서도 억울해졌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으면서도 만나기 싫었다.



우연히 찾은 책방에 혼자 앉아 <긴긴밤>을 읽으며 무턱대고 울었다. 울고 나니 알게 되었다. 나는 외로웠다. 사방에 아름다운 것 투성이지만 그걸 나누고 싶었다는 것을. 고통도 사랑도 함께 하면 안 되겠냐고 끝까지 설득하지 못했다는 실패감에 앙금이 생겼다는 것을 나는 굳게 모르는 척했다.

그 앙금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다.

그래서 도망 왔고, 필사적으로 행복해지려고 이곳에 왔지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나는 혼자가 되지 못했다.

혼자가 되고 싶었나?

그것도 잘 모르겠지만,

외로움이 싫었을 뿐이었던 것 같다.



술을 다 마신 나는 걷고 걸었다. 까슬까슬한 모래 알갱이들이 신발 안으로 들어와서 맘대로 굴러다니는 그 감각이 좋았다. 일몰의 시간이 찾아오면 매번 바다로 향해 걸었다. 아무 데나 앉아서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면서 이치코 아오바의 음악을 들었다. 나의 여행에는 뿔이 잘린 코뿔소도, 재잘재잘 떠드는 작은 펭귄도 없었지만, 죽음과 재난과 슬픔은 마음 구석진 곳에 사라지지 않고 앙금이 생겨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채. 해가 다 질 때까지 수평선 너머를 계속 쳐다보았다. 기나긴 밤이 시작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있을 거다. 곧장 내 옆에는 아무도 없지만 내 살아감에는 정말 많은 사랑이 있어서. 내가 계속 살아만 있다면 이 사랑은 당신의 것이 되기도 할 테니. 아직 우리가 만나지 못했더라도, 살아만 있으면 우리는 언젠가 만나게 될 거야.

너를 꼭 만나고 싶다.


긴긴밤이 시작되었다.

엉덩이에 박힌 모래를 털고 일어섰다.

무언가를 끝내 찾지 않아도 돼.

잊지 않으려 애쓰지 않아도 .

나의 살아감이 누군가의 용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2022.06 제주에서

작가의 이전글 모든 절망이 사라질 때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