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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ffyeon Dec 01. 2022

12월 1일


 벌써 12월이네요. 시간은 날이 갈수록 가속도가 붙고 차가운 공기에 코가 찌를 듯 아픕니다. 어쩌면 저는 겨울보다는 여름을 더 좋아하는 인간일 수도 있겠구나 싶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과 연락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거절을 못하는 성격 때문에 누군가 부르면 나가긴 하지만, 누가 날 찾지 않으면 그대로 침잠했습니다. 며칠간 집에서 누워만 있었어요. 무기력했습니다. 블로그를 들어가 보니 2년 전 오늘과 3년 전 오늘 내가 쓴 글을 보여줬어요. 3년 전 저는 자취방 근처에 사는 곤이와 자주 담배를 폈고 새벽에 만나서 저는 논문을 쓰고 곤이는 사진 보정을 했습니다. 잠깐 만났던 선배와 자주 데이트를 했고 그 만남 속에서 충족되지 못한 감정을 알게 되었던 것 같았어요. 그 사람은 저를 정말 많이 좋아해 줬는데. 왜 좋아했을까요. 사실 저는 알아요. 그 사람이 처음으로 날 사랑하게 되어버린 그 순간을. 그 순간을 알면서도 저는 모른 척했습니다.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건 정말 날씨만큼이나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가을이었는데, 이렇게나 담배도 피우기 힘들 정도로 추우니까 말이죠. 2년 전 저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지도 모른 채로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어요. 그 사람이 죽지 않기만을 생각했어요. 그 글을 다시 읽었는데 잠깐 잊어버린 (잊고 싶었던) 풍경들이 생각났습니다. 그 애가 연락이 되지 않으면 저는 불안했어요.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시간에 그 애가 늘 건너오는 횡단보도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그 애를 기다렸어요. 그 애를 만나면 일단 웃었습니다. 내 불안함과 슬픔을 들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강해야 했습니다. 그 곁에 있기 위해서 강해지려 노력했습니다. 내 슬픔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습니다.




 내가 정말 외로웠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누군가가 옆에 함께 누워있는 풍경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알게 되었어요. 누군가의 품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그 온기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그러나 온기만을 그리워한 게 아니라서, 나는 그 허상에서 벗어나려 노력했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워진 것인지 상처받는 게 이제 지쳐버린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내가 외롭다는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사람은 모두 외로우니까. 혼자 견뎌내기 힘든 것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 속에서 내 곁에 있기로 약속해주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건 내가 사람이라서. 사람은 외로우니까.




 한파가 찾아오니 낡은 집이 이때다 싶어 곳곳에서 말썽을 부리고 있어요. 갑자기 싱크대 배수구가 터져 어젯밤에는 현관에 물이 가득 찼고 그 물들을 닦아내고 닦아냈습니다. 물을 틀지 않고, 벽 틈에 수건으로 막았어요. 쭈그려 앉아서 물을 푹 머금은 수건을 바라봤어요. 대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년 전 이맘때 이 집에 이사 왔을 때, 이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일러가 고장이 났어요. 그때는 한창 한파주의보가 내렸고 엄청나게 추웠을 때였죠. 그나마 덜 추운 룸메이트 방에서 조금이라도 함께 온기를 나누면서 이겨냈습니다. 이 집은 추워지면 조금씩 고장이 나는 것 같습니다. 그게 저와 다를 바 없게 느껴졌습니다.




 오늘 집주인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졸업 전시에서 오랜만에 만난 선배들과 술을 마셨는데, 한 선배가 비싼 안경을 놓고 가서 그나마 친한 제가 그 안경을 가져왔거든요. 그 안경을 택배로 보내야 해서 겨우 집 밖으로 오랜만에 나왔습니다. 비싼 안경이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며칠간 고민만 했습니다. 밖에 나가기 싫었는데 그 선배 덕분에 밖을 나왔어요. 그래서 택배비는 괜찮다고 말하고 답장은 읽지 않았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겨버린 틈도 막아버리면 괜찮아질 수 있다고 믿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가 나약한 것뿐이었어요. 오해로 생겨버린 틈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가 노력해야 하는데, 저는 그 틈을 어떻게든 제가 채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거는 오만이고 도망이었습니다. 아무도 저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무기력한 요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일단 나왔습니다. 책 두 권과 노트북을 들고. 자주 가는 카페에 앉아서 차가운 커피를 마시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을 읽고 써야지 제가 살아있다고 느껴집니다. 시를 못 쓴 지 좀 오래됐어요. 요즘 시가 잘 읽히지 않습니다. 돈을 벌면 시 모임부터 다녀야겠어요. 모든 것들이 어중간한 요즘 죽어도 된다는 건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는 뜻이라고 말한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어쩌면 저는 지금 다시 태어나는 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조금씩 사라지고 싶어요. 영영 보이지 않는다면 제가 더 잘 보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없는 건 내가 있다는 뜻일 테니까요.




추신. 이 편지를 읽게 된 사람들은 첫눈을 보았나요? 저는 아직 보지 못했어요. 흰 눈으로 어떤 마음을 가리고 싶나요. 저는 모든 마음이 하얀 것으로 덮이면 그 위에 어떤 문장을 쓰고 싶습니다. 그 문장은 아직 쓰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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