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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희 Dec 21. 2022

트루빌 항구



 한덕수 씨는 온 동네를 다니며 쓸어 모은 소주 공병을 팔아 작은 컵라면 하나를 손에 쥘 수 있었다. 항구 근처 편의점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들고 매일같이 그가 자리 잡고 앉아 시간을 때우는 꾀죄죄한 풀색 플라스틱 의자에 엉덩이를 디밀었다. 명당이었다. 특히 해 질 무렵이면 속천항의 전경이 피에르 보나르의 그림 속 트루빌 항구처럼 노을빛으로 물들었는데 한덕수 씨는 자신이 명화 속 이물로 느껴져 때로는 슬픔을 느끼기도 했다. 금단으로 인해 미치광이처럼 날뛰는 두 손을 꼭 붙든 채 한덕수 씨는 항구 건너편으로 아스라한 시선을 던졌다. 



 십 년 전 그도 저 아파트촌 어딘가에 터를 잡고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 사람 좋기로 유명한 한덕수 씨는 조기퇴직 후 편의점, 치킨 전문점, 실내 세차장을 창업했으나 메르쿠리우스의 은총을 받지 못해 매번 사업에 실패했고 지인의 소개로 비상장주식에 투자했지만, 그 또한 사기임이 뒤늦게 밝혀졌다. 김창식, 박용호, 장필성 등에게 떼인 돈도 한두 푼이 아니었다. 한덕수 씨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매일 술을 마셨고 매일 소리를 질렀으며 매일 뭔가를 집어던지고 누군가를 때렸다. 한덕수 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세상을 향해 패악질을 부리는 것뿐이었다. 



 그날은 둘째 놈이 제대하는 날이었다. 한덕수 씨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술을 마셨고 비틀대면서도 현관문을 호기롭게 열어젖혔다. 순간 익숙했던 공간에서 이질감이 훅 끼쳐왔고 닭살이 곤두섰다. 거실이 평소와 달리 너저분했다. 쿠션이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얹혀있었고 텔레비전 리모컨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도둑이 들었나, 그는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안방 문을 열어보았다. 마누라가 시집올 때 장만해온 자개농의 문짝이 죄다 열려있었고 옷가지들이 어수선하게 늘어져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녀가 아낀다며 일 년에 한두 번 입을까 하던, 윤기 흐르는 밍크코트도 사라졌다. 두 아들의 방도 비슷한 상태였다. 오래전 유럽으로 가족여행을 떠날 때 사용했던 캐리어 가방 세 개도 보이지 않았다. 한덕수 씨는 망연자실한 채 거실 창밖으로 아름답게 노을이 내려앉은 속천항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그날 이후 한덕수 씨는 온전히 혼자가 되었다. 십 년이 다 되도록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고 또 애써 찾으려 들지도 않았다. 그저 거리를 떠돌며 고해하는 심정으로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왔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노을이군, 한덕수 씨는 바닥에 내려놓았던 다 식어 빠진 컵라면을 붙들고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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