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희 Mar 19. 2023

호떡



 “맨날 호떡을 먹는다고?”
동그래진 두 눈에 호기심을 가득 품고 아현이 묻는다.
 “응, 맨날 먹어.”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한 후 호떡을 내려다본다. 기름에 갓 튀겨져 나온 호떡은 가장자리가 바삭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며 쫄깃하다. 한입 베어 물면 뜨거운 설탕물이 입술로 흘러내리는데 혀끝으로 그 단맛을 할짝대다 보면 불행이 내 곁에서 조금쯤은 멀찌감치 떨어져 서성대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호떡을 한입 베어 물려고 하는 순간 아현이 나타나 아는 체를 했다. 방학 동안의 안부를 묻고 반 친구들의 소식을 전하는 동안 호떡은 하릴없이 식어버렸다.
 

 “고등학생 된다고 엄마가 아이패드 사줬어. 그걸로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는데, 뭔 소린지. 유튜브나 보겠지.” 하며 아현은 키득거린다. 고단수의 자랑질이다. 좋겠네, 성에 차지 않을 대꾸를 하고 만다. 제발 좀 가라, 속으로 간절히 빌었지만 아현은 눈치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워섬긴다.
  


 겨울의 원성천 벚나무길은 을씨년스럽다. 헐벗은 나뭇가지들은 괴기스럽게 깡말라 있고 누렇게 시든 풀포기들 위의 잔설은 얼룩덜룩 더럽혀져 있다. 게다가 살을 찌르는 북풍의 무정은 내 심장까지 덩달아 싸늘하게 식히고 만다. 작년 겨울까지만 해도 이토록 처참하진 않았다. 물론 똑같이 나무들은 헐벗고 풀은 시들고 바람은 차가웠지만, 그때는 엄마와 함께였다. 둘이 원성천 벚나무길 벤치에 나란히 앉아 사이좋게 호떡 하나씩을 손에 들고 있었다. 지글지글 기름에 갓 튀겨낸 뜨거운 호떡을 입술을 달싹거리며 맛있게 먹던 엄마, 술만 마시면 개가 되는 아빠의 주먹질에 한쪽 눈이 시커먼 보랏빛으로 물들곤 했던 엄마, 옷 한 벌 챙기지 않고 말 한마디 남기지 않은 채 맨몸으로 사라져 버린 엄마, 그런 엄마는 이제 내가 당신의 대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까.

 

 “근데 안 추워? 어떻게 맨날 여기 앉아서 호떡 먹을 생각을 하냐?”
 글쎄, 그리운 시간을 추억하기 위해서? 혹시나 엄마가 호떡을 먹으러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나도 모르겠다. 팔자 좋은 아현아. 그제야 나는 종이봉투 안에서 식어 눅눅해진 호떡 하나를 꺼내 아현에게 내민다. 아현아, 네가 눈물 젖은 호떡의 맛을 알겠니. 손에 든 호떡을 한입 베어 물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눈물이 주룩, 흘러내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실패한 정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