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희 Apr 12. 2023

토마토 이야기



가와무라 세쓰님께

  안녕하십니까. 매일 극심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건강은 어떠신지요. 삼복염천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편지를 받고 당황하진 않으셨을지 걱정입니다만 모쪼록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에미 히로시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10년 전 댁의 부군을 음주운전으로 비명횡사케 한 장본인입니다. 당시 결심 공판에서 법정 관람석에 앉아 있던 가와무라 세쓰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그때 가와무라 세쓰님은 만삭의 몸을 이끌고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법정에서 4년의 징역형이 선고되자 당신의 얼굴은 참담하게 구겨졌습니다. 그제야 저는 제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에게로 달려가 무릎 꿇고 용서를 빌고 싶었으나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당신의 절망을 마주하기가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4년의 복역을 마치고 이부스키 시로 가와무라 세쓰님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늦게나마 제가 한 짓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어린 아들과 함께 토마토가 가득 든 비닐봉지를 들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만약 그때 당신이 아이를 향해 단 한 번이라도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었더라면 저는 염치없이 당신에게 달려가 용서를 구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의 표정은 법정에서 보았던  그때와 똑같이 구겨져 있었고 당신 아이의 표정은 당신을 닮아 있었습니다. 그길로 저는 당신들로부터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가와무라 세쓰님의 부군을 차로 들이받은 그날, 그의 곁에는 토마토가 어지럽게 널려있었습니다. 만약 그날 밤 그가 사 온 토마토를 당신과 당신 뱃속의 아이가 먹었더라면 당신들은 다른 표정을 지으며 살아갈 수 있었겠지요.
  

  그날 이후 저는 공사판을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가족과 친구를 버리고 떠돌아다니며 제 몸을 혹사시켰습니다.  단 한순간도 행복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습니다. 가와무라 세쓰님, 제가 이제 와서 용서를 구하는 파렴치한 짓을 어찌하겠습니까. 다만 저 또한 당신들과 같은 표정으로 이 생을 살다 간다는 사실, 그 사실에 작게나마 위안받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 편지가 가와무라 세스님께 꼭 전해지길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가내 두루 평안하시고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에미 히로시 드림

매거진의 이전글 황혼이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